지구온난화가 다년간 지속되는 가뭄을 일으켜 전 세계적인 물 부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도에서 아예 물이 나오지 않아 생활과 산업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입는 날이 닥친다는 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진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극심한 다년 가뭄의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2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단순한 물 부족을 넘어, 도시와 농촌의 생활·농업·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최신 기후모델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활용해 특정 지역의 물 수요가 강수량·하천·저수지의 물 공급을 초과하는 시점을 계산했다. 이 시점을 '데이 제로 가뭄(DZD)'이라 이름 붙였다. 말 그대로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2019년 인도 첸나이 등 대도시가 물 공급 중단 위기에 처한 바 있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부족과 하천 유량 감소, 물 사용량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표수에만 의존하는 지역이 극도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중해 지역과 남아프리카, 북미 일부가 주요 DZD 위험지대로 확인됐다. 이번 분석에서 지하수는 제외됐다. 만약 지하수마저 고갈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15년 안에 전 세계 취약 지역의 35%가 DZD에 직면할 수 있으며, 세기말에는 약 7억 5000만명이 물 부족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가운데 도시 거주민은 약 4억 7000만명, 농촌 인구는 약 2억 9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중해 지역은 도시 물 부족,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는 농촌 생계 위기가 심각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도시 식수와 농업을 위한 물 공급 시스템이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DZD 발생 빈도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급증할 것임을 보여준다.
베키아 라비난드라사나(Vecchia Ravinandrasana)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 결과는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으로 DZD 조건을 유발하고,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기온 상승 1.5도 제한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수억 명이 전례 없는 물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표로,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크리스티안 프란츠케(Christian Franzke) 부산대 기후물리연구소 교수는 "수자원 스트레스가 심화되면서 주요 저수지의 14%가 첫 번째 데이 제로 사태 때 이미 고갈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농업·생계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37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