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코트디부아르 타이 국립공원에서 자두와 비슷한 열매를 먹는 두 수컷 침팬지의 모습./Aleksey Maro

야생 침팬지들이 발효된 과일을 통해 하루에 맥주 한 잔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근 후 맥주를 즐기는 인간처럼, 침팬지도 매일 '가볍게 한잔'을 즐기는 셈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진은 "야생 침팬지들이 하루에 먹는 과일의 알코올 함량을 측정한 결과, 약 14g의 순수 에탄올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이 정도 알코올은 맥주 한 잔(355mL) 수준이다.

침팬지가 먹는 야생 과일은 우리가 사 먹는 과일과 달리 미량의 알코올을 갖고 있다. 자연 발효 과정을 거쳐 당분이 효모에 의해 에탄올로 바뀐 결과이다. 특히 무화과, 포도, 자두 등 당분이 높은 열대·아열대 과일에는 0.1~0.5% 정도의 알코올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연구진은 침팬지 식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과일에서 에탄올 농도를 직접 측정했다. 아프리카 우간다와 코트디부아르 두 지역에서 20종의 꽃피는 식물(속씨식물) 과육을 분석한 결과, 평균 0.31~0.32% 수준의 에탄올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과일 섭취량이 4.5㎏에 달하는 침팬지들은 하루 약 14g의 에탄올을 먹는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간다 침팬지들은 무화과, 코트디부아르 침팬지들은 자두과(科)인 기니플럼을 주로 먹었다.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 UC버클리 생물학과 교수는 "과일 속 알코올 농도는 낮지만, 침팬지들의 과일 섭취량이 워낙 많아 상당한 양의 알코올을 먹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들리 교수는 침팬지들의 알코올 섭취가 '취한 원숭이(drunken monkey)'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설은 인간의 음주 성향이 에너지가 풍부한 발효 과일을 찾던 영장류 조상들의 습성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다. 그는 "인간이 술을 좋아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식이적 유산(dietary heritage)' 영향이 크다"고 했다.

수컷 침팬지 두 마리가 발효된 아프리카 빵나무 열매를 먹고 있다./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이번 연구에서 침팬지들의 음주 습성을 처음 포착한 것은 아니다. 2015년 서아프리카 기니의 한 마을에서 17년간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야생 침팬지들은 야자수 수액이 발효된 것을 51번이나 마시는 모습이 관찰됐다. 지난 4월 영국 엑서터대 연구진은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칸탄헤즈 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 무리가 자연 발효된 과일을 나눠 먹는 장면을 10차례 촬영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술에 취한 동물의 모습은 종종 소개됐다. 동물들이 열매나 꿀이 자연 발효되며 생긴 알코올을 섭취하고 비틀거리거나 숙취를 겪는 장면이 포착되곤 했다. 과거에는 우연한 일로 여겼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침팬지들이 의도적으로 술자리를 갖는다고 본다.

더들리 교수는 "침팬지들이 인간처럼 매일 술을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거나 취한 것으로 보이는 외형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침팬지들이 알코올의 영향을 온전히 느끼려면, 배가 빵빵해질 만큼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진은 침팬지들이 몸속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알코올을 지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변 분석을 진행 중이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w1665

Current Biology(2025),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25)00281-7

Royal Society Open Science(2015), DOI:

https://doi.org/10.1098/rsos.15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