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세포 막단백질이 짝을 이루는 과정의 '숨은 단계'를 세계 최초로 포착했다. 단백질이 한 번에 결합한다는 기존 통설을 깨고, 실제로는 지퍼처럼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야만 결합이 완성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민두영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세포 막단백질이 짝을 이루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그 안에 존재하는 중간 단계를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8월 9일 게재됐다.
세포를 둘러싼 막에는 수많은 단백질이 박혀 있다. 이 막단백질들은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거나 신호 물질을 내보내는 관문 역할을 하며, 이 중 약 50% 이상은 두 개가 짝을 이뤄야 제 기능을 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 과정에서 막단백질이 서로 점진적으로 결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단백질은 곧바로 붙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부터 맞물리며 여러 중간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의 짝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두 막단백질이 다가와 한 번에 결합한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은 '막단백질 상호작용 단분자 집게(single-molecule tweezers)'라는 새로운 분석법을 통해 이를 밝혀냈다. 이 분석법은 양쪽 단백질을 일종의 집게로 붙잡아 잡아당기면서 결합이 어떻게 진행되고 끊어지는지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추가 실험에서도 입증됐다. 연구진은 막단백질 사이에 짧은 펩타이드 조각을 끼워 넣어 결합을 방해했다. 그러자 단백질의 결합은 중간 단계에서 멈추고 말았다. 마치 지퍼를 채울 때 가운데 톱니가 망가지면 끝까지 잠기지 않듯 막단백질도 특정 단계가 막히면 결합 자체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민두영 교수는 "막단백질이 중간 단계를 통해 순차적으로 결합한다는 사실은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큰 전환점"이라며 "유방암 치료제인 '퍼제타(Perjeta)'에도 이 막단백질 결합 억제 원리가 적용되고 있는데, 결합의 숨겨진 단계를 밝혀내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보다 효과적인 신약 설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단분자 집게 분석법은 의약학적으로 중요한 막단백질 결합 과정을 정밀하게 규명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28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