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디지털·AI 장관 회의 참석자들의 모습. 이날 회의에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일곱번째)을 비롯해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중국 산업정보화부 차관, 일본 총무성 차관 등 21개 APEC 회원 경제 대표가 모두 참석했다.

"지금 인류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지난 시대의 우주 경쟁에 비견할 만한 변화와 도전의 시기다."

지난 5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글로벌 디지털·인공지능(AI) 포럼'에서 개별 세션의 기조 연설자로 나선 쑹지준 중국 산업정보화부 차관과 마이클 크라치오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약속한 듯 현재 AI 분야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견 없는 AI 격변기 속에서 첫 APEC 디지털·AI 분야 장관 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21개 APEC 회원 경제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각국의 AI 인프라 개발 현황과 당면 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래픽=박상훈

◇"'모두의 AI' 위한 협력 필요"

이번 회의에서는 디지털·AI 혁신 활성화 방안뿐 아니라 디지털 격차 해소 방안, 안전한 AI 생태계 구축 방안 등 다각도에서 AI 분야를 조망한 논의가 진행됐다. 특히 민간 기업들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지난 4월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 연구소의 AI 인덱스에 따르면 국가별로 민간 부문의 AI 투자 규모가 큰 차이를 보인다. 투자 규모가 가장 컸던 미국의 경우 지난해 기준 1090억달러(약 151조원)가 투입된 반면 2위인 중국은 93억달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각국은 적극적으로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약 5000억원을 지원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나섰다. APEC 회원 경제는 지난 4일 회의에서 장관 선언문을 채택하고 '모두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디지털·AI 전환'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민관을 아우르는 다자간 협력에 나서는 것이다.

◇美·中 갈등 속 한국 역할 강화

행사에서는 AI 분야 선두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 차도 도드라졌다. 두 번째 세션의 기조연설을 맡은 쑹 중국 산업정보화부 차관은 "디지털 산업 및 공급망 분야에서 개방적인 협력을 통한 공동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며 "제로섬(Zero-sum) 사고방식을 버리자"고 했다. 반면 포럼 세 번째 세션의 기조연설을 맡은 크라치오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은 "미국은 각국의 시스템에 맞는 AI 패키지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다"며 "APEC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과잉 규제로 유럽식 모델을 따라가다가 정체될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은 AI 모델과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술 표준 등 산업을 포괄적으로 우방국에 수출하려는 이른바 'AI 풀스택(Full-Stack) 수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미국과 중국 간 AI 분야 치열한 패권 경쟁에서 우리가 반사이익을 얻은 점도 있을 것 같다"며 "우리만의 AI 모델 서비스 영역에서 차별점을 만들어 간다면 지켜 나가야 할 것들은 지키면서 다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APEC 장관 회의 성료로 디지털·AI 분야에서 한국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평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APEC 회원 경제 간 실무 논의를 이끌며, APEC AI 이니셔티브 개발 작업을 추진 중이다. 10월 APEC 정상회의에서 AI 거버넌스, 공급망 관리, 관세 행정 디지털화 등 구체적 성과를 도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