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자신의 단백질 구조를 병원균으로 오인해 스스로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서로 다른 품종 간 교배 후 스스로 고사하는 '잡종 괴사(hybrid necrosis)' 현상이 그렇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진이 그 원인을 밝히고 이를 예측·회피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송지준 교수 연구진은 싱가포르 국립대(NUS), 영국 옥스퍼드대와 함께 식물 자가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단백질 복합체 'DM3'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진은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활용했다. 이번 연구는 식물 잡종 간 교배 시 면역 수용체의 비정상적 반응으로 발생하는 잡종 괴사의 원인을 '단백질 구조의 결함'에서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단백질 DM3은 원래 식물의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효소인데, '위험 조합(DANGEROUS MIX, DM)'이라 불리는 특정 단백질 조합에서 DM3 단백질의 구조가 망가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DM3의 변이체 중 하나는 'DM3Col-0' 변이체는 6개의 단백질이 안정적으로 결합하며 정상으로 인식돼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에 반해 또 다른 'DM3Hh-0' 변이체는 6개 단백질 간의 결합이 제대로 안 돼, 식물은 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식하고 면역 경보를 울리며 자가 면역을 유발한다.
연구진은 초저온 전자 현미경으로 해당 구조를 원자 단위 해상도로 관찰해, 면역 유도 능력은 DM3 단백질의 효소 기능이 아니라 단백질 결합력 차이 때문임을 밝혀냈다. 이는 식물이 '외부 병원균'뿐만 아니라 '내부 단백질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변할 때도 이를 병균으로 인식해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품종의 식물을 교배하면서 유전자가 섞이고 단백질 구조가 변할 경우 식물 면역계가 얼마나 민감하게 변화하며 자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지 보여준 결과라고 설명했다.
논문 제1 저자인 김기정 박사는 "국제 연구 협력을 통해 구조 생화학, 유전학, 세포생물학적 실험을 망라한 완성도 높은 연구로 식물 면역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송지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면역 시스템이 외부 병원균뿐 아니라 자기 단백질의 구조적 이상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식물 생명공학·작물 교배 전략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반의 구조 분석이 유전자 간 상호작용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셀(Cell)'의 자매지인 '분자 세포(Molecular Cell)'에 지난 17일 실렸다.
참고 자료
Molecular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molcel.2025.06.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