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지난 9일 충북혁신도시 KISTEP 본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초연구 투자가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과학기술 부총리가 국가 CTO로서 여러 부처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고 말했다./KISTEP

"연구개발(R&D)은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2년 전 R&D 예산 삭감은 이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지난 9일 충북혁신도시 본원에서 만나 "국가 정책이나 예산 상황에 따라 R&D 예산도 바뀔 수 있고, 기술 포트폴리오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면서도 "R&D 생태계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예산 삭감이나 증액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을 카르텔로 매도하면서 연구 현장의 사기,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오 원장은 30여 년간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한 정통 관료다. 윤석열 정부 초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했지만, 2023년 갑작스런 R&D 예산 삭감 직전에 물러났다. 당시 조성경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이 그를 대신해 1차관으로 와서 R&D 예산 삭감을 이끌었다.

그는 과기정통부에서 나와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혁신정책을 가르치다가 지난달 1일 KISTEP 원장에 취임했다. KISTEP은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돕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새 정부 출범 직전에 KISTEP 원장을 맡은 만큼 오 원장의 과학기술혁신 정책 구상이 중요한 상황이다.

오 원장은 새 정부에서 비슷한 실수를 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전략기술이나 게임체인저 같은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중단되거나 급격하게 삭감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오 원장은 "정권이 바뀐다고 R&D 투자 분야가 확 달라지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미국만 해도 트럼프 1기 정부 때 진행한 AI(인공지능), 양자기술 투자가 바이든 정부 때도 이어지고, 이번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유지되면서 미래 먹거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원장은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정책추진체계(거버넌스)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R&D 투자 체계는 과학에만 집중하고 기술에서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봤다.

그는 "R&D 투자가 중요하고 기초과학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체감하고 수긍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1년에 30조원을 R&D에 투자했는데 단순한 논문이나 특허 수로만 성과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실제 산업 발전이나 이노베이션(혁신)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R&D가 아닌 R&I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 성과(R)가 어떻게 산업이나 기업의 이노베이션(I)으로 이어지는지 살핀다는 뜻이다. 오 원장은 "과학 정책과 기술 정책은 목표나 평가 등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지금 한국은 이 두 개념이 섞여 있다"며 "R&D 투자가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 원장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부활을 꺼냈다. 노무현 정부 때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고 국가 CTO의 권한을 부여한 바 있다. 오 원장은 "한국은 여러 부처가 R&D 투자를 하고 있고, 저마다 자기 영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30조원의 투자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고, 어느 분야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은 기존의 경제부총리나 사회부총리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R&D 투자를 기업이나 산업의 혁신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학기술 정책에서 머무르지 않고 세제, 산업, 스타트업 육성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이 융합돼야 한다고 했다. 여러 부처가 나눠서 맡고 있는 이런 정책을 한데 모아 R&D 투자가 실제 산업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과학기술부총리 같은 거버넌스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오 원장은 KISTEP의 개편도 예고했다. 그는 R&D 예산의 편성과 집행, 평가가 각각 다른 조직에서 이뤄지다 보니 제대로 된 기획과 평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 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정책 대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산 편성과 전략, 기획, 평가까지 한 조직 내에서 맡아야 유기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