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떡 먹기란 말이 있다.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누워서 돈 벌기라는 말로 바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열흘간 물침대에 누워 있으면 800만원 가까운 돈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겪을 신체 변화를 지구에서 대신 체험하면서 우주 탐사에 필요한 의학연구에 참여하는 대가이다.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우주 비행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재현하기 위해 10일 동안 물침대에 누워 지내는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비발디(Vivaldi) 3호라는 이름을 붙인 이 실험은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메데스(MEDES) 우주병원에서 진행된다.

프랑스 툴루즈의 메데스 우주병원에서 한 남성 지원자가 물침대에 누워 식사를 하고 있다. 물침대는 우주공간의 무중력 환경을 구현한다./ESA

◇물침대에서 우주 무중력 체험

실험 동안 참가자들은 방수 천으로 덮인 욕조와 비슷한 용기에 누워 있어야 한다. 안에는 물이 있어 물침대와 같다. ESA는 “실험 참가자들은 물에 젖지 않고 떠 있는다”며 “물리적으로 받치는 것 하나 없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데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우주 비행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참가 자격은 20~40세 남성이다. 비흡연자로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키는 165~180㎝이고, BMI(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20~26이어야 한다. 한국이라면 비만 기준인 BMI 25를 넘는 사람도 포함되지만, 서구는 다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부분은 BMI 30을 비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비발디 3호는 인체에 대한 무중력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비발디 실험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분야다. 이 실험은 10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원자들은 21일 동안 입원한다.

처음 5일 동안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하고, 다음 10일 동안은 물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다음 5일은 회복을 하고 무중력 상태 이후 신체 상태를 측정하는 시간이다. 실험 동안 전화 통화는 할 수 있지만, 외부인을 만날 수는 없다. 외롭고 지겨운 생활이지만, 대가는 5000유로(한화 790만원)로 적지 않다.

유럽우주국(ESA)은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에서 신체가 겪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남성 12명을 두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도록 하면서 자전거 타기와 원심분리기 회전 시험을 했다./ESA

◇영화 속 외계인처럼 변하는 우주비행사

비발디 실험은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우주에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지구에서 알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ESA에 따르면 우주비행사가 장기간 우주에 머물면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몸이 변한다.

지구에서 서 있으면 중력에 의해 피가 아래로 내려가지만, 중력이 거의 사라진 우주에서는 몸 어느 곳이나 균등하게 피가 흐른다. 그만큼 지구보다 머리에 피가 더 많이 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들은 늘 얼굴이 부어 있다.

동시에 뼈에서 칼슘도 한 달 평균 1% 줄어든다. 근육에서는 단백질이 빠져나간다.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에 탑승했던 우주인들은 1년 뒤 약 20%의 근육 단백질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주에서 오래 있으면 점점 머리는 부풀고 팔다리는 가는 영화 속 우주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말이다. 우주정거장에 상주하는 우주인들이 하루에 2시간씩 밧줄을 몸에 매달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필사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이런 신체 변화 때문이다.

ESA는 2023년에는 원심분리기처럼 회전하는 장치에서 누운 채 자전거를 타는 실험도 진행했다. 우주에선 중력이 약해 피가 다리 쪽으로 몰리지 않는다. 억지로 운동을 해야 피를 다리로 보낼 수 있다. 당시 실험 참가자들은 원심분리기에서 회전하면서 발 쪽으로 혈액을 유도하기 위해 자전거를 돌려 중력을 두 배로 높였다. 무중력 상태에서 운동하는 상황을 지상에서 구현한 것이다.

번지 줄을 단 여성이 벽을 타고 달리는 모습. 오토바이로 원통 벽을 타고 달리는 서커스가 있지만 사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달처럼 중력이 약하면 사람도 수직 벽을 수평으로 달리며 운동할 수 있다./이탈리아 밀라노대

◇서커스 보고 달기지 운동 착안

이탈리아 밀라노대 과학자들은 지난해 우주에서 인공 중력 효과를 낼 방법을 찾아냈다. 서커스 공연장에서 원통 안쪽 벽을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처럼, 달에서 우주인이 원통 안쪽에서 벽을 따라 달리면 지구처럼 중력을 받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밀라노대의 알베르토 엔리코 미네티(Alberto Enrico Minetti)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미래 달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원형 벽 안쪽을 하루에 몇 바퀴만 돌면 약한 중력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네티 교수 연구진은 오토바이를 타고 원통 안쪽 벽을 달리는 서커스인 ‘죽음의 벽(wall of death)’에서 문제를 해결한 영감을 얻었다. 오토바이가 원통 벽을 따라 고속으로 달리면 관성이 오토바이를 벽으로 밀어붙여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생긴다. 이 힘은 벽과 오토바이 타이어 사이에 마찰을 일으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다.

사람은 오토바이처럼 지구 중력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관성을 생성할 만큼 빠르게 달릴 수 없다. 하지만 중력이 작다면 이론적으로 사람도 오토바이처럼 벽을 타고 달릴 수 있다고 연구진은 생각했다. 밀라노대 연구진은 중력이 약한 달의 환경을 모방한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해 가능성을 입증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우주 무중력 환경을 구현한 실험들이 우주비행사뿐 아니라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환자나 노인, 근골격계 환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겪는 신체 변화는 지구에서 노약자나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SA는 “우주에서 얻은 결과는 노인과 근골격계 질환, 골다공증 환자를 위해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ESA(2025),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Human_and_Robotic_Exploration/Extended_space_dive

Royal Society Open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098/rsos.231906

ESA(2023),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Human_and_Robotic_Exploration/Around_the_bed_in_60_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