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에서 미각을 구현하는 기술이 나오고 있다./챗GPT 달리

맛집에 가기 전에 가상세계에서 먼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과학자들이 가상현실(VR)에서 맛까지 구현하는 데 잇따라 성공했다. 지금까지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가상현실이나 실제 환경과 가상 정보를 합성한 증강현실(AR)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미각까지 추가되면 가상세계에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세펌프로 젤 분사, 혀에 맛 제공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와 중국 대련공대 연구진은 "음식을 가상으로 맛볼 수 있는 인간-기계 인터페이스(HMI)인 '이-테이스트(e-Taste)'를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HMI는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가상세계에서 맛을 구현하기는 어려웠다. 혀에 전극을 대고 전류를 흘리거나 온도를 달리 해 맛을 흉내 내는 기술이 나왔지만, 맛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진은 이-테이스트가 실제 맛 성분을 이용해 짠맛부터 신맛·단맛·쓴맛·감칠맛(우마미)까지 다섯 가지 기본 맛을 모두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테이스트는 화학물질로 맛을 만들었다. 짠맛을 내는 데는 염화나트륨, 신맛은 구연산, 단맛은 포도당, 쓴맛은 염화마그네슘, 감칠맛은 글루타메이트를 사용했다. 맛에 따라 이들을 섞어 젤 형태로 만들고, 아랫니에 장착된 미니 펌프를 통해 혀로 전달했다.

연구진은 16명에게 이-테이스트를 시험한 결과, 안전성과 맛 조절 기능, 다양한 맛 조합 재현 기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테이스트는 다섯 가지 맛 성분을 조합해 치킨 수프나 레모네이드 같은 복합적인 맛도 제공했다.

이-테이스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게임에서 상으로 받은 음식을 맛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식품을 구매하기 전에 미리 맛을 볼 수 있다. 음식을 먹지 않고도 맛에 대한 만족감을 줄 수 있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테이스트는 다섯 가지 맛 성분을 조합한 맛만 구현할 수 있고, 음식의 질감이나 온도는 구현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맛 성분을 더 많이 추가하고, 음식의 온도와 질감까지 재현하는 기술을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시립대 연구진은 가상현실에서 맛을 느끼게 하는 막대사탕 모양의 장치를 개발했다./PNAS

◇막대사탕 장치로 과일, 녹차 맛 구현

지난해 11월 홍콩시립대 연구진은 막대사탕 모양의 맛 제공 장치를 공개했다. 사탕처럼 혀로 핥으면 맛이 나는 장치다. 설탕과 소금, 구연산으로 각각 단맛과 짠맛, 신맛을 줬다. 체리나 패션프루트, 녹차, 우유, 두리안, 자몽의 풍미도 낼 수 있는데, 이때는 과일이나 음료에서 추출한 물질을 썼다..

연구진은 9가지 맛을 낼 수 있는 화학물질을 젤에 넣었다. 전류를 흘리면 젤에서 화학물질이 나와 사용자가 맛볼 수 있다. 전류가 세면 화학물질도 많이 나와 맛이 강해지고, 약하게 흘리면 맛도 약해진다. 맛 제공 장치는 무게가 15g으로, 실제 막대사탕의 무게와 비슷하다. 연구진은 막대사탕 장치는 2V(볼트) 이하의 전기로 작동해 안전하다고 밝혔다.

홍콩시립대 연구진은 미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후각까지 함께 구현하기 위해 냄새 성분을 전달하는 장치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신맛을 맛볼 때 레몬 향을 더하면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다만 이 장치는 1시간 사용하면 젤을 교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젤 사용 시간을 늘리고, 맛의 종류와 강도를 다양하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r4797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412116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