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몰락에 납으로 인한 지력(智力) 저하가 한몫했을까. 미국 사막연구소(DRI) 연구진은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로마인들이 대기 중의 납 오염물로 인해 각종 질병과 지적 능력 저하를 겪었을 것이라고 6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로마인들이 납 중독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추정은 이전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로마인의 유골에서 납 농도가 정상치보다 높게 검출됐다는 연구가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원인을 로마인들 식습관에서 찾거나, 상수도·식기 등 일상 용품에 납이 함유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DRI 연구진은 로마 제국이 ‘팍스 로마나’ 시절 거래 수단으로 활용한 은화에 주목했다. 은화를 만들기 위해 은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납이 대기 중으로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를 이끈 조지프 매코널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은 1온스(28.35g)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납이 1만온스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600년까지 로마 제국 기간의 대기 질 조사에 나섰다. 연구진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채굴 및 제련 작업이 이뤄졌다는 역사적 기록에 착안했다. 이때 납에 오염된 대기가 이동해 러시아와 그린란드 등 빙하에 축적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분석을 시작했다. 연구진은 방하를 분석해 로마 전성기 때 얼마나 많은 납이 발생했는지 확인했다. 납이 은 채굴 과정에서 생겼는지 밝히기 위해서는 대규모 컴퓨터 모델링을 활용, 로마 제국 당시 은광 등 광산의 위치와 납 발생 추정량을 반영해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했다.

분석 결과, ‘팍스 로마나’ 시기에 매년 납 3300~4600t이 로마의 은광 채굴로 인해 대기 중으로 퍼진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당시 로마의 어린이들 혈액 0.1L당 평균 2~5mg 더 많은 납 성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IQ를 평균 9만큼 낮추는 정도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로마인들의 체내 납 농도는 조산 발생률을 높이고 노년기 인지 저하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