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질병이 생기기 10여 년 전부터 당뇨병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개발돼 내년부터 영국 공공 의료 체계에 시범 도입된다. AI를 활용해 질병을 예측하는 임상 시험을 공공 의료 영역에서 대규모로 시행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우선 1000명을 대상으로 1차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이후 정식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AI를 활용해 질병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면, 예방을 통해 의료비를 아끼고 삶의 질과 인간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AI를 통한 질병 예측이 공중 보건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은 “당뇨병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식단을 조절하고, 건강한 체중을 유지한다면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며 “AI 예측을 통한 질병 예방이 보건 의료를 혁신할 거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당뇨 예측 정확도 70%”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세계 최초로 산하 병원 2곳에서 당뇨병 위험을 측정하는 AI(Aire-DM)를 시범 운영한다”고 24일 보도했다. 영국은 공공 의료 체계인 NHS를 통해 국민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과 소속 병원 연구팀이 개발한 이번 AI는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분석한 심전도(ECG)를 통해 최대 13년 뒤의 당뇨병 위험을 예측해 준다. 연구팀은 심전도 데이터 약 120만개를 사용해 당뇨병 위험도를 예측하는 AI를 만들었다. 심장 전기신호의 전달 방식이 변하거나 특정 전기가 발생하는 패턴의 변화는 당뇨병의 초기 경고 신호다. 하지만 심전도 변화는 너무 다양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숙련된 의사라고 해도 해석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AI가 해결한 것이다. 연구팀이 50만명 이상의 의료 데이터 등으로 이번 AI를 검증한 결과, 다양한 연령·성별·민족 등 사람들의 당뇨병 위험을 70% 정확도로 예측했다. 환자의 나이, 성별, 고혈압 및 과체중 여부 등의 세부 정보를 추가하면 AI의 예측 정확도는 더 높아졌다.

연구팀은 내년부터 임피리얼 칼리지, 첼시·웨스트민스터 병원 등 2곳에서 환자 최대 1000명을 대상으로 AI 시스템이 실제로 당뇨병 위험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시험할 계획이다. 이 연구에 자금을 지원한 영국심장재단은 “당뇨병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이 궁극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뇨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지는데, 미리 위험을 알고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심전도를 통해 당뇨병 외에 심부전,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앞으로 몇 년 안에 영국이나 세계 다른 나라의 전체 의료 서비스에 도입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암, 알츠하이머 예측으로 확장

이번 사례는 의료 AI가 질병 진단이나 판독을 넘어 예측까지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AI는 주어진 이미지나 영상을 보고 현재 질병 유무를 판독하는 진단 분야가 대다수다. 하지만 현재 상태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질병 위험도까지 판단하는 AI가 본격적으로 의료 현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AI 질병 예측이 대중화하면 맞춤형 지원을 통해 질병 예방까지 나아갈 수 있어 공중 보건을 혁신할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 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질병 예측 시장 규모는 2024년 42억4000만달러(약 6조1870억원)에서 2034년 204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AI를 통해 암이나 심혈관 질환, 알츠하이머 등 위험도가 높은 질환을 포착하려는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은 유방암 위험도를 예측하는 AI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의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유방 촬영 영상을 분석해 향후 5년 내 환자의 유방암 발생 위험도를 예측하는 모델이다. 또 국내 AI 스타트업인 메디웨일은 망막 촬영기로 3분 만에 심혈관 위험 정도를 예측하는 AI 의료 기기 ‘닥터눈’을 개발했다. 망막 혈관 패턴으로 심혈관 관련 질환, 혈당 수치, 질환의 위험도 등을 예측하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인지 검사와 MRI 결과로 알츠하이머 진행을 예측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50만명 이상의 바이오 마커(생체 지표) 데이터를 학습해 1000개 이상의 질병을 높은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 ‘밀턴(MILTON)’을 개발했다. 헬스케어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의 AI 예측 기술은 아직 임상에서 유의미하게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면서도 “AI 질병 예측이 대중화할 경우 많은 사람의 다양한 질병 위험 자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