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과 항공기가 방향을 잡을 때 기준이 되는 지구 자기장 지도의 최신판이 공개됐다. 새 지도를 보면 지구자기장 북극(자북)은 최근 5년간 캐나다 북부에서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했다. 북극과 남극에서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 블랙아웃 지역도 같은 기간 위치가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영국 지질조사국(BGS)은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세계자기모델(WMM2025) 최신판을 공개했다.

NOAA는 “이번에 공개된 WMM은 일종의 최신판 지구 자기장 지도”라며 “모든 군용기와 민간항공기, 선박, 잠수함과 위성항법시스템(GPS)에 새로운 정보가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에 실려있는 항해용 나침반. 지구자기장을 이용해 선박의 방향을 잡는데 활용된다. /NOAA

◇자북 캐나다서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 중

지구의 자기장은 지구가 탄생한 이후 천천히 변화해 왔다. 지구 지각판은 해령(해저 산맥)을 따라 솟아오르면서 바닷물을 만나 식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장은 일정한 값을 띠게 된다. 지각 운동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는 지각판은 마치 테이프 레코더처럼 과거의 자기장 강도와 방향 정보를 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정보를 활용해 1억6000만년 동안 지구 자기장의 세기 변화나 남북극이 뒤바뀌는 지자기역전 같은 변화를 추적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에는 지리적인 북쪽을 의미하는 ‘진북(眞北)’과 나침반 자침이 가리키는 북쪽인 ‘자북(磁北)’이 있다. 자북은 자기장이 바뀌면 위치가 변한다. 자기 북극과 진북 사이의 각도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데 그 거리 차이는 약 1000㎞에 이른다. 북극의 반대편인 남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은 계속해서 변하는 지구 자기장을 살펴보기 위해 세계자기모델(WMM)을 개발했다. 이 자기장 지도는 시간에 따른 지구의 주요 자기장 변화를 보여준다.

이번에 공개된 새 자기장 지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자북극은 캐나다에서 러시아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지구 자기장은 외핵에서 전기 전도성을 가진 액체 상태의 철과 니켈이 회전하고 대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과학자들은 최근 20년 간 시베리아 지하에서 대류 현상이 활발해지면서 자북극이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07년 캐나다와 프랑스 연구진은 자북이 연간 약 55㎞의 속도로 북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영국지질조사국은 이번 분석에서 자북이 20년 동안 시베리아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다가 5년 전 갑자기 이동속도가 연간 50km에서 35km로 줄었다고 파악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자북의 이동 속도 감소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지구 자기장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영국지질조사국 연구원은 “자북은 1500년대부터 캐나다 주변에서 천천히 이동했었다”며 “현재의 움직임은 전례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에는 지리적인 북쪽을 의미하는 ‘진북(眞北)’과 나침반 자침이 가리키는 북쪽인 ‘자북(磁北)’이 있다. 자북은 자기장이 바뀌면 위치가 변한다. 자기 북극과 진북 사이의 각도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데 그 거리 차이는 약 1000㎞에 이른다. 북극의 반대편인 남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BGS

◇항공기 선박 운항에 영향, 공항 활주로 번호도 바꿔

WMM은 미연방항공청과 미 국방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수로기구, 영국 수로국 등 항행 분야에서 국제적 권위를 가진 기관이 표준 모델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항법 기술이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정확한 자기장 모델은 위성 항법에 필수적이다. 자기장 모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인공위성 위치에 오류가 생겨 통신, 기상 예보와 위성항법시스템(GPS) 서비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법 시스템 전문가들은 새로 바뀐 지구자기장을 반영하지 않으면 장거리를 여행하는 비행기와 선박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지질조사국 관계자는 기술전문지 인터레스팅엔지니어링과 인터뷰에서 “만에 하나 남아프리카 어느 집에서 영국의 눈 덮인 어느 집 지붕까지 썰매로 8500㎞를 여행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전에 사용하던 정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단 1도만 틀어져도 약 150㎞ 떨어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도 지구 자기장 지도의 정확도를 유지하기 위해 5년마다 수정해 발표하고 있다.

지구자기장 변화는 고위도 지역의 활주로 이름도 바꾸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따라 공항 활주로는 나침반의 방위 활주로 번호로 표시된다. 활주로 번호는 01부터 36까지이며, 활주로가 향하는 자기 방위를 10으로 나눈 수를 뜻한다. 예를 들어 활주로 번호 09는 동쪽(90°), 18번은 남쪽(180°), 27번은 서쪽(270°), 36번은 북쪽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이동이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더 빨리 일어나다 보니 고위도 공항들은 적도에 가까운 공항보다 더 자주 이름을 바꿔야 하는 형편이다.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 국제공항은 2009년 활주로 이름을 1L-19R에서 2L-20R로 바꿨다. 공항 측은 지구자기장 변화의 속도를 반영하면 2033년 이름을 다시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북과 자북의 편각을 나타낸 지도. 자기북극과 블랙아웃 구역이 표시돼 있다. /NOAA

◇10배 정밀한 자기장 지도 공개

새 자기장 지도는 지구 자기극 주변의 블랙아웃 구역의 새 위치도 반영했다. 블랙아웃 구역은 나침반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곳을 나타내는 지역으로 지구 자기장을 항해에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미국과 영국은 올해 처음으로 한층 정밀한 세계자기모델 고해상도(WMMHR2025) 지도도 함께 공개했다. 적도에서 표준 공간해상도 3300㎞보다 향상된 300㎞의 훨씬 정밀한 해상도로 자기장 방향을 제공한다. 관계자들은 10배 정밀한 이 지도가 나침반과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크게 바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선 기존 자기지도를 사용하던 스마트폰이나 차량 내비게이션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지도와 GPS기반 앱(응용 프로그램)은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필요한 수정작업을 하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자기 남북극이 뒤바뀌는 역전 현상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선 지구에 급격한 지자기 역전이 일어나면 지구 환경에 심각한 변화가 생길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자기장의 변화가 단기적으로 지구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인류를 위협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참고 자료

NOAA(2024), https://www.ncei.noaa.gov/news/world-magnetic-model-2025-released

NOAA(2019), https://www.ncei.noaa.gov/news/world-magnetic-model-out-cycle-rele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