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긴수염고래(Eubalaena australis)가 수면 위로 도약하는 모습. 최근 연구에서 일부는 132년 이상 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존 수명 추정치인 70~80년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다./iNaturalist.org

고래는 포유류 중에서 장수의 왕으로 꼽힌다. 일부 고래는 100년을 넘게 살며, 북극고래는 211세까지 생존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장수 기록은 희귀한 조직 샘플을 복잡한 기술로 분석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미국 페어뱅크스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대, 호주 그리피스대의 국제 연구진은 생명 보험사가 사용하는 통계 기법을 이용해 고래의 수명을 추정한 결과, 일부 고래는 기존 연구가 예측한 수명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0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이날 게재됐다.

연구진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Eubalaena glacialis)와 남방긴수염고래(Eubalaena australis)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기존의 고래 나이 측정법은 외이도에 쌓인 귀지 층을 세거나 눈 단백질의 화학적 변화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이 방법은 샘플 채취가 어렵고 일부 종에는 적용하기 힘들었다. 특히 연구 대상인 두 종은 포경산업으로 타격을 받아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조직 샘플 채취가 더욱 어려웠다.

연구진은 1970년대부터 축적된 사진 카탈로그를 활용했다. 사진에서 개별 고래를 식별하고 사라진 시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를 생명 보험사가 인간의 사망률을 예측하고 보험료를 책정할 때 사용하는 통계 모델에 입력했다. 수십 년에 걸친 사진 기록과 통계 기법을 결합해 고래의 수명을 추정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남방긴수염고래의 중간 수명은 약 73년으로 나타났다. 이 중 10%는 132년 이상 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존 수명 추정치인 70~80년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다. 연구를 이끈 그레그 브리드 페어뱅크스대 교수는 “남방긴수염고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산다”고 설명했다.

반면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중간 수명은 22년으로, 10%만이 47년을 넘길 가능성이 있었다. 연구진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남방긴수염고래보다 짧게 사는 이유는 선박 충돌과 어구에 얽히는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남방긴수염고래는 북극고래보다 더 활발한 생활을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명을 보였다. 북극고래는 느린 대사율과 더불어 느리게 성장하고 움직이는 생태적 특성 덕분에 장수를 누리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스 테위센 미국 노스이스트 오하이오 의과대 교수는 “이들의 장수 비결은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밝혔다.

브리드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남방긴수염고래뿐 아니라 다른 고래 종들도 현재 알려진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아직 고래의 진정한 수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q3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