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지구까지 중국의 '과학 굴기(崛起·우뚝 일어섬)'가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올해 과학기술계를 빛낸 10명을 선정해 10일 발표했다. 이중 2명이 중국인 과학자로, 이전에는 주로 해외에서 활약한 중국인 과학자가 주목을 받았지만, 이번에 선정된 사람들은 모두 중국 본토에서 성과를 거뒀다.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대변한 것이다.
네이처는 미국 사이언스와 과학계 양대 학술지로 꼽힌다. 해마다 연말에 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발견과 연구 성과를 낸 과학자 10명을 선정한다. 올해는 연구자뿐 아니라 과학들의 처우 개선과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한 변호사 등 과학에 기여한 다양한 인물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中 지질학자와 의학자, 세계에서 인정 받아
중국의 무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6호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무사 귀환했다. 미국은 유일하게 우주인을 달에 보냈지만, 모두 지구를 향한 앞면만 갔다.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 뒷면에서 토양 시료를 채쥐하고 지구로 가져온 것은 중국이 처음이었다. 네이처는 창어 6호가 가져온 토양 시료를 처음 받아서 분석한 중국 국가항천국(CNSA) 소속의 지질학자 리 춘라이(Li Chunlai) 박사를 올해 10대 과학 인물에 선정했다.
리 박사는 창어 6호가 가져온 달 뒷면 토양 시료에서 현무암 108개 조각을 찾아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을 했다. 동위원소는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것을 말한다. 연대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선을 방출하고 다른 동위원소로 변한 비율을 분석해 추정한다.
연구진은 그중에서 약 42억 3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을 찾았다. 이 현무암 조각에는 칼륨과 희토류 원소, 인이 풍부했는데, 24억년 전에 만들어진 달 뒷면 현무암 조각에는 이런 성분이 부족했다. 리 춘라이 연구진은 "달의 뒷면에서 42억년 전부터 28억년 전까지 최소 14억년 동안 화산 활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CNSA 연구진은 달 뒷면 시료 분석 결과를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잇따라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달 뒷면 토양 시료로 확인한 화산 활동 연대를 기반으로 달 내부의 맨틀 구조와 성분 차이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창어 6호가 가져온 1.935㎏ 토양 샘플이 달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새롭게 쓰고 있는 것이다.
네이처가 10대 과학인물로 선정한 또 다른 중국 과학자는 쉬후지(Huji Xu) 칭화대 의대 겸 상하이 창정병원 교수다. 그는 다른 사람의 면역세포로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T세포 치료제를 만들었다.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공격해 없애는 면역세포다. 기존의 CAR-T세포 치료제는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T세포로 만들었지만 쉬 교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T세포로 CAR-T세포 치료제를 만들었다..
CAR-T세포 치료제는 환자의 몸 안에서 암세포나 감염 세포의 항원만 골라서 없애기 때문에 효과가 좋지만, 환자마다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혈액암 CAR-T세포 치료제인 킴리아는 치료 비용만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쉬 교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보통 다른 사람의 세포가 들어오면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쉬 교수는 이런 부작용을 해결했다. 타인의 세포로 만들 CAR-T세포는 자가면역질환자에서 뚜렷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그만큼 CAR-T세포 치료제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환자마다 치료제를 만들지 않고 미리 건강한 사람의 세포로 CAR-T세포 치료제를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치료비도 낮출 수 있다.
리 춘라이와 쉬후지는 중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이미 과학기술 분야의 여러 지표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심지어는 역전하고 있다. 네이처가 지난 6월 발표한 '네이처 인덱스 연구리더 2024′에서도 중국은 처음으로 미국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주요 자연과학 저널에 발표된 우수 논문수와 공저자, 소속기관의 기여도를 참고해 순위를 매기는데 중국이 미국을 앞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전 세계 우수연구대학 상위 10곳 중에 미국의 하버드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9곳은 모두 중국이었다.
◇기상예보 AI 개발한 딥마인드 연구원도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인물에는 엠폭스(MPOX·옛 명칭 원숭이두창)의 확산을 경고한 콩고민주공화국 역학자와 기상예보 인공지능(AI)을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소속 연구원도 포함됐다.
엠폭스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확산한 감염병으로 올해에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10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2022년 이후 꾸준히 변종이 나타나며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립생의학연구소의 역학자인 플라시드 음발라(Placide Mbala) 박사는 엠폭스가 콩고를 넘어서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해 전 세계에서 발 빠른 대처가 가능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레미 램(Rémi Lam) 연구원은 기상 예보에 AI 기술을 도입해 기존 시스템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기상예보를 성사시켰다. 레미 램 연구원이 만든 AI 기상예보 모델 '젠캐스트(GenCast)'는 기존에 가장 뛰어난 수치예보모델인 유럽중기예보센터의 'ENS'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기후 변화로 폭염이나 강풍, 열대성 저기압 같은 극한 기상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런 기상 현상에 대해서는 12시간 빠른 예측도 가능했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에케하르트 페이크(Ekkehard Peik) 박사는 원자핵을 이용한 초정밀 시계의 탄생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인물에 올랐다. 페이크 박사는 2001년 토륨-229의 핵 진동을 활용해 오차가 거의 없는 초정밀 시계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원자핵의 진동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페이크의 아이디어는 20년이 지나서야 현실이 됐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와 보더 콜로라도대 공동 연구진은 레이저를 이용해 토륨-229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전환하는 걸 정확하게 측정했다. 과학계는 초정밀 원자시계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수십억년 동안 단 1초의 오차도 없는 시계가 곧 세상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우주의 팽창 속도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은 웬디 프리드만(Wendy Freedman)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논문 공장을 폭로한 안나 아발키나(Anna Abalkina)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구원, 20년 만에 캐나다 연구자들의 급여 인상을 이끈 토론토대학 박사과정생 케이틀린 카라스(Kaitlin Kharas), 기후변화 소송에서 수천 명의 여성을 대리한 스위스 변호사 코델리아 베어(Cordelia Bähr), 방글라데시 정부의 임시 지도자가 된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도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인물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