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 년 전, 오늘날 케냐 지역에서 서로 다른 두 인류 조상이 먹이를 찾다가 마주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앞서 유라시아에 진출한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산 것처럼 또 다른 두 인류 조상이 공존했다는 의미다.
미국 럿거스대 연구진은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150만 년 된 화석을 분석해 서로 다른 두 인류 조상의 발자국이 거의 동시에 형성됐다고 지난 29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쿠비 포라’로 알려진 투르카나 호수 주변 지역은 오래전부터 인류 진화 연구의 중심지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사람 족(族)인 ‘호미닌(hominin)’의 화석이 자주 발견됐다. 호미닌은 약 600만~700만 년 전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인간 계통에 속하는 모든 멸종 또는 생존 생물을 뜻한다. 이전에는 인류 조상을 과(科) 단위인 호미니드(hominid)로 구분했지만, 최근에는 과보다 하위이고 속보다 상위인 호미닌으로 구분한다.
연구진은 2021년 쿠비 포라 지역에서 호미닌의 발자국 화석을 처음 발견했다. 이후 2022년 7월부터 발자국이 포함된 지층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분석한 결과, 당시 가장 흔한 호미닌 종(種)이었던 호모 에렉투스와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의 것이었다.
크레이그 페이블 럿거스대 교수는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두 종의 발자국은 이들이 같은 서식지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준다”며 “발자국이 남겨진 지층의 퇴적 환경을 분석해 이 발자국들이 몇 시간 안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3차원 분석 기술을 활용해 각 호미닌의 보행 자세를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종이 서로 다른 이족(二足)보행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일한 지층에서 두 종류의 이족보행 방식이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플라이스토세(260만~1만1700년 전) 호미닌 진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도 평가된다.
인류 조상 종들이 공존한 것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먼저 유라시아에 진출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수만년 간 공존하며 교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래 전 멸종했지만 공존 시기에 호모 사피엔스와 피를 섞어 그들의 유전자가 현생 인류에도 있다.
이번 발견으로 호모 에렉투스와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역시 같은 서식지를 공유하며 협력하거나 경쟁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인류 진화는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명확히 대체되는 릴레이 달리기가 아니라, 여러 종이 마라톤처럼 동시에 존재하며 생존 경쟁을 벌이다 누군가는 뒤처지거나 멸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인간 속인 호모 에렉투스는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가 멸종하고 수십만 년 뒤 사라졌다.
케빈 하탈라 미국 채텀대 교수는 “발자국 화석은 고대 인간의 행동과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며 “발자국 화석은 뼈나 석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수백만 년 전 실제 개체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상호작용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발자국들을 통해 두 종이 어떻게 호숫가 환경을 활용했는지를 유추하고, 이들의 생태적 역할과 상호작용이 인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인간 진화의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며 “앞으로의 발굴과 연구가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o5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