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1년에 30조원이 투입되고,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재원도 15조원이 넘는데 그걸 통해서 얻는 기술료는 한 해에 1400억원 정도다. 기술이전 한 건당 기술료 수입이 2000만원이다. 이런 현실을 깨려면 기술사업화 전문회사를 중심으로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책임과 권한을 줘서 마음껏 놀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정부가 대학의 기술 사업화 전담조직인 기술지주회사를 기술사업화 전문회사로 육성하기 위한 규제 개선에 나선다. 대학을 시작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기술사업화 기능도 강화해 정부가 매년 수십조원을 투입하는 공공 R&D에서 나오는 연구 성과가 우리 기업과 산업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29일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대학 내 산학협력단(산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 사업화 전담조직인 기술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대폭 풀어줄 계획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대학의 기술지주회사와 관련된 지분율 제한 같은 다양한 규제가 민간 투자 유치를 가로막고 있다”며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규제와 현물투자 관련된 제한을 모두 없애서 민간 투자 유치를 통해 증자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 혁신생태계 고도화 대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KISTEP

기술지주회사는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하고 여기서 생기는 수익을 연구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2007년 생겼다. 2008년 7월 한양대 기술지주회사가 설립된 이후 여러 대학이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나섰고, 2022년 말 기준으로 80개로 늘었다. 기술지주회사가 보유한 자회사도 2008년 2개에서 2020년 1478개로 늘었다.

하지만 제도 도입 20년이 가까워지면서 기술지주회사에 대한 지분 보유 의무 등을 규정한 산학협력법 등이 오히려 기술지주회사의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컨대 현행 법은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의무지분율(10%)을 규정하고 있다. 좋은 기술을 보유한 자회사가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면 기술지주회사도 의무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 증자를 해야 하는데, 대학의 재정 상황이 열악해 의무지분율을 맞추지 못해 자회사의 투자 유치 자체가 불발되는 사례가 있다.

한 대학 산단 관계자는 “자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기술지주회사 입장에서는 좋아해야 할 일인데, 의무지분율 때문에 오히려 투자 유치를 포기하도록 하거나 아예 자회사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비합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술지주회사 육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술지주회사에 대한 이런 불합리적 지분 규제를 모두 없애 기술지주회사를 대학의 기관을 넘어서 기술사업화 시장을 주도하는 전문회사로 키울 계획이다.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지분율 규제와 대학 산단이 기술지주회사 자본금의 30%를 초과해 현물출자하도록 한 규정, 기술지주회사 발행 주식 총수의 50%를 초과해 보유하도록 한 규정 등을 모두 없앨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기술사업화 구조는 연구자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구조라서 연구자가 발명도 하고, 지적재산권(IP)도 내고, 세일즈도 하고 기술 이전 협상까지 다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런 구조를 바꿔서 연구자는 연구만 잘하면 나머지는 기술사업화 전문회사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학 기술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풀고 기술사업화 전문회사로 육성한다. 그림의 위쪽은 기술지주회사의 운영 프로세스, 아래는 기술지주회사 현황./교육부

정부의 기술사업화 전문회사 설립은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대학 기술지주회사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푸는 한 트랙과 별개로 출연연 기술사업화 조직에 대한 리모델링도 진행된다. 출연연 기술사업화 사업 개편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주도한다. 유 장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기술사업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한 바 있다.

출연연의 경우 대학 기술지주회사와 달리 지분 규제보다는 실제 사업화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개선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한 출연연 원장은 “제대로 된 기술사업화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 줄 변리사 같은 지원 인력이 중요한데, 현행 제도로는 기술사업화가 성공해도 지원 인력은 성공 보수 같은 인센티브를 받는 게 어렵다”며 “과기정통부와 출연연이 힘을 합쳐 지원 인력에게 제대로 된 몫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 혁신생태계 고도화 대토론회’에서는 기술사업화 세션이 진행됐다. 손수정 STEPI 선임연구위원은 “기술이 있다고 바로 사업이 될 수는 없고, 산업 동향에 맞게 튜닝하고 권리화도 필요하다”며 “기술사업화 전문회사를 통해 새롭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재원을 마련해주면 시장의 빅머니가 들어와 유니콘과 슈퍼스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동훈 사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MD도 “기술사업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 조직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R&D에 머무르지 말고 실제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스케일업하는 사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인간중심생산기술연구소장은 “기술사업화에 시장 매커니즘을 적용하는 건 시의적절한 제안”이라며 “사업화를 지원하는 중간 조직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역량을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