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

점액질을 이용해 먹이를 사냥하는 우단 벌레(Velvet worm)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소형 로봇과 새 모양을 본뜬 비둘기 로봇이 잇따라 개발됐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와 ‘사이언스 로보틱스’가 최근 전한 이런 연구가 이어지는 것은 동물 생체 모방 로봇 연구로, 동물의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기능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액질로 붙고, 갈고리로 잡고

우단 벌레는 관절이 없어 몸체가 부드러운 점과, 점액을 이용한 끈적끈적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고려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이 벌레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원격제어가 가능한 자가 접착 로봇을 선보였다. 로봇은 자기장에 반응하는 실리콘 유사체인 엘라스토머(MRE)로 제작돼 벌레처럼 말랑거리고, 점액처럼 끈적거리는 표면을 지녀 자성(磁性)을 이용해 쉽게 붙었다 떨어질 수 있다. 이 로봇은 순두부, 연어 알 등 미끄럽고 부서지기 쉬운 물체를 정밀하게 잡아 운반하고, 실험 쥐를 이용한 종양 제거 수술에서 수술 부위에 정확하게 부착돼 수술을 보조할 수 있었다. 천성우 고려대 교수는 “수술용 로봇은 장기에 안정적으로 부착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라며 “우단 벌레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장기에 잘 부착되고, 수술 후에는 쉽게 떨어질 수도 있는 로봇을 개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울퉁불퉁한 표면에 달라붙게 하려고 동물의 발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로봇도 있다. 지난 6월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 연구팀이 공개한 ‘로리스(LORIS·Lightweight Observation Robot for Irregular Slopes)’는 도마뱀이나 원숭이처럼 네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불규칙한 표면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로봇이다. 이처럼 울퉁불퉁한 벽면을 타고 오를 수 있는 로봇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공개됐지만 대부분 빨판을 쓰는 방식이었다. 로리스는 관절을 최소한으로 줄여 고장 가능성을 낮춘 갈고리 모양 발톱을 활용했다. 이 로봇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소행성 탐사에 활용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비행·수중 탐사 기술 개선에 활용

동물의 외형을 따른 생체 모방 로봇은 주로 관찰용으로 쓰인다. 새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들어 숲에 배치함으로써 새의 생태를 관찰하는 식이다. 하지만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기도 한다. 사이언스 로보틱스 최신호에 공개된 새 모양의 로봇 ‘피전 2′는 수직 꼬리날개 없이도 활공할 수 있는 새의 특성에서 새로운 비행 기술을 얻기 위해 제작됐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새의 척추 모양과 깃털을 섬세하게 모방한 로봇을 개발해 새들이 나는 방식으로 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로봇의 날개는 접혔다 펼쳐지기도 하고, 기울어지기도 하면서 진짜 새처럼 날도록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새가 날개와 꼬리 반사 작용으로 비행을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가설을 확인했다”며 “날개와 꼬리를 활용한 비행 안정화 기술을 향후 항공기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국 비디아시리메디 과학기술원은 최근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분변 덩어리를 굴리며 이동할 수 있는 쇠똥구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로봇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6개의 다리를 가지고 자기 체중의 몇 배에 달하는 물체를 밀면서도 정확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이 로봇은 재난 구조 활동, 우주 공간에서의 건설 등에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싱가포르국립대(NUS) 연구팀은 지난달 문어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됐다. 이 로봇은 문어처럼 불규칙하고 유연한 다리 8개를 이용해 물속에서 이동하고, 물건을 잡고, 주변 물체를 조작할 수 있다. 로봇은 두 번 발진해 초속 314㎜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이 로봇을 이용해 수중 탐사나 수색, 구조 작업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