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1평 독방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이 풀려나 드넓은 벌판과 바다를 처음 접한다면? 아마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인류에 이와 비슷한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924년 11월 23일 일요일 아침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천체 관측 관련 기사였다. 안드로메다 성운(星雲)이 ‘우리은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에드윈 허벨(Hubbel) 박사가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허블(Hubble)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기사였지만 파장은 엄청났다. 당시 우주관을 완전히 뒤엎는 연구 결과였기 때문이다.
◇우주의 재발견 100주년
은하는 수많은 별들과 가스, 먼지, 암흑 물질 등이 결합된 거대한 집합체로, 태양계가 속한 은하는 ‘우리은하’라고 한다. 허블이 연구 결과를 발표할 당시 통념은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허블이 우리은하가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고 관측으로 입증한 것이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류의 기존 인식을 어마어마하게 확대한 계기로 꼽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허블의 발견이 지동설(地動說)만큼이나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평가한다. 이들은 지난 23일을 ‘우주의 재발견’ 100주년으로 보고 있다.
허블이 근무했던 미국 윌슨산 천문대에는 당대 최대였던 ‘후커 망원경’이 있었다. 허블은 이 망원경으로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변광성(變光星)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안드로메다 성운은 지구에서부터 거리가 90만 광년(오늘날 추정은 250만 광년)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알려진 우리은하의 지름(10만 광년)을 훨씬 넘어서는 거리로,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은하 안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를 통해 허블은 안드로메다가 우리은하에 속한 성운이 아니라 별도의 은하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기존 통설을 뒤엎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언론을 통해 먼저 발표했다. 이는 학회 발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당시 관례를 깬 것이었다.
◇'빅뱅 이론’ 토대 놓아
허블은 이후 몇 년간 우리은하 이외의 은하 46개를 추가로 관측했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허블의 법칙을 내놓았다. 이 또한 통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우주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고 봤는데, 허블은 우주 팽창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우주의 시작이 있고 계속 팽창해 현재의 우주를 형성했다는 ‘빅뱅(big bang 대폭발) 이론’의 토대를 놓은 것이다. 우주는 팽창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이른바 ‘정상 우주론’은 힘을 잃어갔고, 빅뱅이 우주론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 1조개 이상 은하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만 해도 별이 1000억개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무수한 별이 우주에 있는 것이다.
허블은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1953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리는 취지로 명명된 ‘허블 우주 망원경’은 1990년 우주로 발사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관측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우주의 생성 시기를 138억년 전으로 추정하는 등 우주의 진화 연구에서 허블과 허블 우주 망원경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 은하(銀河)
수많은 별, 가스, 먼지, 암흑 물질 등이 중력으로 결합된 거대한 집합체를 말한다. 태양계가 속한 은하는 ‘우리은하’라고 한다.
☞ 성운(星雲)
가스와 먼지가 별과 별 사이에 거대한 구름처럼 모여 있는 것으로, 은하의 일부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