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H5N1)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 대유행하면 일반 생각과 달리 고령층이 젊은 세대보다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 H5N1형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에 노출된 경험이 많아 면역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1927년부터 1998년 사이에 태어난 만 19~90세 사이의 필라델피아 주민 121명의 혈액 시료에서 항체를 분석한 결과를 지난 2일 의학논문 공개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공개했다.
H5N1 바이러스는 주로 조류를 감염시키는데,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가 각각 5형, 1형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여럿 감염시키며 두 단백질의 형태를 바꾸는 쪽으로 진화한다.
과거 H5N1 감염 사례에서 고령층은 젊은 세대보다 감염 확률이 낮았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이 H5N1과 가까운 바이러스인 H1N1, H2N2에 이전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H1N1 바이러스는 1918년 돼지에서 인간으로 전파되며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H2N2는 1957년부터 1968년까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수준으로 퍼졌다.
연구진은 H1N1 또는 H2N2에 노출됐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면역력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 대상자 121명의 혈액에서 항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68년 이전에 태어나 H1N1 또는 H2N2에 노출된 사람들은 1968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H1N1과 H2N2, H5N1의 공통부분에 결합하는 항체가 약 3배 더 많았다.
해당 항체와 H5N1 바이러스를 인체 세포에 처리했더니 항체가 바이러스 감염을 막지는 못하지만, 면역 세포가 바이러스를 파괴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을 확인했다. 마르크 벨드후엔 포르투갈 리스본대 교수는 “이러한 항체는 H5N1 감염으로 인한 중증 질환이나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령층은 항체가 많더라도 면역 체계는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중증 증상에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면역력이 더 낫다고 안심하지 말고 바이러스가 퍼지면 바로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항체가 적은 젊은 세대도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추가로 2005년 H5N1에 대한 백신 시험에 참여한 100명의 혈액 시료도 분석했다. 백신 접종 전 10세 미만 어린이의 항체 수치는 성인보다 낮았지만, 백신 접종 후에는 항체 수치가 성인보다 8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젊은 세대는 백신으로 고령층보다 더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케 후크리에데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는 “H5N1이 인간 간 전파로 이어질 경우, 이번 연구 결과가 백신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medRxiv(2024), DOI: https://doi.org/10.1101/2024.10.31.2431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