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기원전 97년,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최후를 맞았다. 애절하게 껴안은 상태로 굳어버린 두 사람, 어린 아기를 무릎에 앉힌 어른을 비롯해 수많은 인간 화석이 그날의 참상을 현재에도 전하고 있다. 이 화석들의 혈연 관계를 과학자들이 DNA 분석으로 밝혀낸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예컨대 포옹하는 자매, 어머니와 자녀 등으로 추정돼온 관계가 실제로는 혈연적으로 무관한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 피렌체대와 미국 하버드대 공동 연구진은 폼페이 유적지의 인간 화석에서 DNA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를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14개 폼페이 인간 화석을 대상으로 DNA 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폼페이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지녔으며, 지금까지 학계에서 추정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성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서로 안고 있는 상태에서 굳은 비슷한 체구의 두 사람은 자매 또는 모녀 관계일 것으로 추정되어 왔는데, 이번 DNA 분석 결과에서는 남녀 관계에 서로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황금 팔찌를 한 가족’으로 알려진 3명의 화석은 지금껏 무릎에 아기를 앉힌 어머니와 가족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서로 유전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핵가족으로 여겨지던 이 인물들은 한 집에 사는 주인과 노예들이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DNA 분석은 폼페이인들이 다양한 인종의 조상을 가졌다는 것도 밝혀냈다. 연구진은 “고대 로마가 얼마나 세계적인 도시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고대 로마의 다양한 인간 관계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