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전 세계에 폭염이 이어지면서 에어컨 없는 곳마다 선풍기 앞으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선풍기가 열을 식히기는커녕 오히려 오븐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올리 제이 호주 시드니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고온·건조한 환경에서 선풍기를 사용하면 심장에 무리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보건기구들은 폭염에 선풍기를 사용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너무 더우면 선풍기가 열풍으로 음식을 익히는 에어프라이어처럼 작용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기온이 섭씨 32.2도를 넘으면 선풍기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선풍기 사용 자제 온도를 40도로 정했다.
이번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기온보다 습도가 선풍기 효과를 좌우한다고 확인했다. 연구진은 65세 이상 고령 참가자 58명을 모집해 서로 다른 기후 조건에서 선풍기를 사용했을 때 영향을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인도 뭄바이와 사막의 기후를 모방한 방에 들어갔다. 뭄바이 기후는 기온 38도, 습도 60%로 설정했으며, 사막은 기온 45도에 습도 15%로 설정했다. 참가자들은 3시간 동안 방에 머물며 선풍기 바람을 맞았다.
뭄바이 기후 조건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선풍기를 사용했을 때 심박수와 혈압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이 느끼는 스트레스도 31% 감소했다. 선풍기에 물을 뿌린 뒤 사용했을 때는 심장 스트레스가 55% 감소하며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이 교수는 “선풍기를 사용했을 때 땀이 증발하면 체온을 효과적으로 내릴 수 있다”며 “기존의 통념보다 높은 온도에서 선풍기를 사용하면 확실히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막 기후 조건에서 참여한 참가자들은 오히려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참가자들은 실험 중간에 심장에 무리를 느꼈고, 실험은 중단됐다. 연구진은 건조한 기후에서는 이미 땀이 증발한 상태라 선풍기가 주는 이점이 사라진 것을 이유로 꼽았다. 참가자들이 선풍기 바람에서 불어오는 더운 공기에 노출되면서 오히려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이번 결과와 다른 연구도 있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진은 지난달 17일 호주 연구진과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왔다. 이들은 65세 이상 고령 참가자 18명을 모집해 실험했다. 실험 조건은 기온 36도, 습도 45%로 고온·다습한 폭염 상황을 모사했다.
시드니대 연구진은 습도가 높으면 선풍이가 땀을 증발시키면서 건강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오타와대 실험 결과 선풍기 사용이 체온을 낮추거나 건강 악화를 막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선풍기를 사용한 참가자들은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심박수가 분당 5회 낮아졌으며, 체온도 0.1도가량 낮아지는 데 그쳤다.
시드니대 제이 교수는 “선풍기 사용이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온도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히 습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EJM(2024), DOI: https://doi.org/10.1056/NEJMc2407812
JAMA Network(2024), DOI: https://doi.org/10.1001/jama.2024.19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