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인리히하이네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이 꿀벌의 행동 양식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진은 꿀벌의 행동을 추적하기 위해 각각 QR코드를 붙여놓은 모습./독 하인리히하이네대

꿀벌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며 집단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이다. 수천 마리가 조직적으로 움직여 꿀벌 사회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꿀벌의 생활 체계가 학습으로 전달된다고 봤지만, 유전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단서가 나왔다.

독일 하인리히하이네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꿀벌의 행동 양식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2일 공개했다.

연구진은 곤충의 성 결정 시스템에 관여하는 유전자 ‘dsx(doublesex)’에 주목했다.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효소 복헙체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로 dsx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변형하거나 제거한 뒤, 벌에 QR코드를 붙여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인공지능(AI)으로 개별 행동 패턴을 분석한 결과, dsx 유전자가 손상된 일벌들은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정상적인 일벌은 주변을 여러 번 검사하고 유충에게 먹이를 주는 빈도가 높았지만, dsx 유전자 결함이 있는 일벌은 이런 행동의 빈도가 크게 줄었다. 또 먹이를 주거나 공유하는 행동의 지속 시간도 줄었다. dsx 유전자가 일벌이 군집에서 어떤 일을 맡을지, 얼마나 오랫동안 맡을지 결정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dsx 유전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추적해 dsx 유전자가 꿀벌의 두뇌에 있는 버섯체라는 신경 구조에서 제한적으로 발현된다는 점도 확인했다. 버섯체는 뇌에서 중앙 통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연구진은 “버섯체가 꿀벌이 맡는 다양한 집단 활동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꿀벌 사회가 단순히 개체들이 모여 만든 우연적인 집합이 아니라, 유전자가 형성한 신경망과 프로그램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걸 보여준다”며 “인간 사회에서 사회적 행동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꿀벌의 집단행동은 사회적 학습으로도 형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지난 3월 영국 셰필드대 공동 연구진은 꿀벌이 동료를 관찰하며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꿀벌이 설탕물을 얻기 위해서 두 가지 탭을 순서대로 눌러야 하는 2단계 퍼즐 상자를 설계해 실험을 진행했다.

훈련받지 않은 꿀벌들은 처음에 퍼즐을 풀지 못했지만, 훈련된 꿀벌이 군집에 합류하자 다른 꿀벌들도 이들의 행동을 따라 하며 퍼즐을 해결했다. 연구진은 “이 결과는 새로운 환경에서 꿀벌도 사회적 학습과 문화적 전파를 통해 복잡한 행동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두 연구로 볼 때, 꿀벌의 초기 역할은 유전자에 따라 결정되지만 환경에 따라 적응하며 행동이 바뀌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p3953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1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