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014년 인간 뇌 세포 지도 작성과 뇌질환 극복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목표로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출범했다. 미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연방 기관 다섯 곳과 여러 민간 재단이 힘을 모았고, 지금까지 35억달러(약 4조80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160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투입했다.

5조원 가까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인간의 뇌 세포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뭘까. 존 나이(John Ngai) NIH 브레인 이니셔티브 디렉터는 지난 1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 분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명 중 1명이 신경계 장애나 뇌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우리가 대규모 프로젝트에 나선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강릉서 열린 ‘아슬라 심포지엄’ 기조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존 나이(John Ngai) NIH 브레인 이니셔티브 디렉터는 지난 1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 분원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면서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은 질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신경 회로를 더 잘 이해할수록 효과적인 치료법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KIST

신경계 장애나 뇌 질환을 겪는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이는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서 엄청난 공중 보건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단이 없다.

존 나이 디렉터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신체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으로 86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수조 또는 수백조 개의 연결(시냅스)을 형성한다. 그는 이런 뉴런 회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치료법과 예방책을 찾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고칠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현재는 뇌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일부만 가지고 있을 뿐 효과도 크지 않고, 약물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뉴런 회로를 밝히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출범 10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지원을 받은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3일 초파리 성체(成體)의 완전한 뇌 세포 지도를 완성했다. 성체 동물의 완전한 뇌 지도가 완성된 건 선형동물인 예쁜꼬마선충 이후 38년 만이고, 복잡한 신경계를 가진 동물로는 처음이다.

존 나이 디렉터는 초파리에서 더 나아가서 앞으로 5년 동안 생쥐의 전체 뇌세포 지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4년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몇 천 개의 세포를 분석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적으로 수백만 개의 세포를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다”며 “포유류의 뇌세포 지도를 작성하는 것은 10년 전만 해도 과학소설(SF)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많은 부분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뇌 신경공학의 발달이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뇌 질환에서 인류를 해방시켜 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밝혔다. 존 나이 디렉터는 “정확히 언제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목표는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라며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은 질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신경 회로를 더 잘 이해할수록 효과적인 치료법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나이 디렉터는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의 발전과 전 세계적인 연구 협력이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데이터 과학과 AI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AI 기술을 활용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며 “거의 모든 작업에서 AI가 필수적인 도구가 됐고, 뇌세포 지도의 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AI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파리 뇌 연구를 위해 출범한 플라이와이어(FlyWire) 컨소시엄이 공개한 초파리 뇌 신경 지도. 14만개에 달하는 세포와 5000만개의 시냅스가 표현돼 있다. 성체 동물의 뇌 신경 지도가 공개된 것은 1982년 예쁜꼬마선충 이후 42년 만이다./플라이와이어 컨소시엄, 미 프린스턴대

존 나이 디렉터는 AI를 이용해 인간의 뇌를 더 자세히 이해하는 것이 AI 기술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고도 했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 새로운 AI 설계도를 만들고 있고, ‘Neuro-inspired AI(신경기반 인공지능)’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도 출현했다. 그는 “뇌에 대해서 배운 것을 데이터 과학과 컴퓨터 과학에 적용하고, 그 결과로 다시 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뇌의 비밀을 밝히려면 국제적인 연대와 공동 연구도 중요하다. 존 나이 디렉터는 “뇌세포 지도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과학자 400명이 참여하고 있다”며 “여러 그룹이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는 데이터 분석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새로운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했다. 존 나이 디렉터는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연구 자금은 전 세계 모든 대학과 기관에 열려 있다”며 “지금은 한국에서 우리의 자금을 지원받는 연구자가 없는 것 같지만,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의 더 많은 재능 있는 연구자들이 우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