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진영

알프레드 노벨이 살아있다면 인공지능(AI) 관련 연구가 올해 노벨 과학상을 휩쓴 것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2024년 노벨상 발표가 지난 14일(현지 시각) 막을 내린 가운데, 과학계 일각에서 올해 물리학상과 화학상 선정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순수과학 성과가 주로 선정돼 온 노벨 물리학상에 대한 이견이 두드러진다. 인공 신경망과 머신 러닝(기계 학습) 등 AI 관련 성과를 낸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받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조너선 프리처드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 물리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인공 신경망과 머신 러닝을 물리학의 발견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노벨위원회가 AI 과대광고에 넘어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인지 노벨위원회는 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물리학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그림까지 넣어 눈에 띄게 강조한 내용이 홉필드 교수의 노벨상 수상 성과로 꼽는 ‘인공 신경망’이다.

그래픽=이진영

이는 인간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에 착안한 것으로 “기계(컴퓨터)에 뇌를 선물로 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뉴런은 길게 뻗은 가지를 통해 다른 뉴런으로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데, 두 뉴런 사이에는 ‘시냅스’라는 연결 부위가 있다. 학습할 때 이와 관련된 뉴런 간 연결이 강해지는 반면, 다른 뉴런 간 연결은 약해진다.

이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도 데이터 학습 때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성화된 연결을 강화한다. 뉴런이 발화하고 있는 상태를 1로, 휴지기에 있을 때를 0으로 보는 식이다.

노벨위원회는 인공 신경망이 불완전한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그림으로 제시하며 물리학과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불완전한 정보를 입력하는 것을 경사면에 공을 떨어뜨리는 그림으로 비유한 것이다. 공이 아래로 굴러가는 것은 불완전한 정보를 기존 정보와 비교하면서 수정해 가는 것을 뜻하고, 공이 멈추는 것은 불완전한 정보를 기존의 가장 유사한 정보로 수렴한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정보는 이미지, 텍스트, 숫자 배열 등 일정한 형식, 구조를 가진 데이터(패턴)를 뜻한다. 이에 따르면 불완전한 이미지가 입력됐을 때 기존에 저장된 이미지 중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안정된 상태에 도달한다. 이는 전자 스핀 시스템이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물리학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물리학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데 노벨위원회가 AI 연구 성과를 어떻게든 물리학에 연결하려고 무리수를 뒀다”고 지적한다.

다만 과학계 전반적으로는 AI의 과학상 수상을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역을 따져가며 칸막이식으로 연구 분야를 구분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융합 연구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낸 맷 스트라슬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물리학, 수학, 컴퓨터 과학, 신경과학을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였다”고 했다.

심지어 논문에 AI가 공동 연구자로 이름을 올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AI도 수상자로 선정할 수 있도록 노벨상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