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해파리./위키미디어

결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실제로 합체하는 동물이 있다. 과학자들이 두 개체가 신경계와 소화기관까지 완전히 융합해 하나의 개체로 변신하는 해파리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해파리의 독특한 융합 능력이 신경 기능과 재생 의학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 기초생물학연구소 케이 조쿠라(Kei Jokura) 박사 연구진은 “빗해파리류 종(학명 Mnemiopsis leidyi)의 두 개체가 하나로 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8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일본과 미국, 영국, 덴마크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빗해파리는 물속에서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섬모가 마치 빗 모양과 같아 붙은 이름이다. 이름과 달리 해파리와는 관계가 없는 동물이다. 크기는 골프공 크기 정도로, 해외에서는 빗해파리의 울퉁불퉁한 모양을 본떠 ‘바다의 호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이하게 약 7억 년 전부터 현생 동물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탓에, 초기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례로 꼽힌다.

이번 연구는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연구진은 실험실에 해수 탱크를 마련해 빗해파리를 연구용으로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등뼈가 두 개, 입도 두 개, 항문도 두 개인 큰 개체를 발견했다. 마치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빗해파리 두 마리가 뭉친 듯한 모습이었다.

연구진은 실제로 두 개체가 한 개체로 합쳐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빗해파리 두 마리의 신체 일부를 절단한 뒤 가까이 두고 지켜봤다. 그러자 두 개체가 몇 시간 만에 하나로 합쳐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개체는 최소 3주 동안 생존했다. 이 과정은 실험 10번 중 9번 꼴로 관찰됐다.

두 빗해파리는 별도의 거부 반응 없이 신경계와 근육 시스템을 공유하며 완전히 한 개체가 됐다. 연구진이 해파리의 한쪽을 자극하자 반대쪽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서로의 신경계가 통합돼 단일 신경 반응을 보인 것이다. 두 개체가 합쳐진 직후에는 근육은 각각 자발적으로 움직였으나, 2시간 만에 근육 움직임 중 95%가 동기화됐다. 또 두 입 중 한쪽에 형광 새우를 먹이면 항문 두 곳으로 모두 배설물이 나왔다. 소화 기관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합쳐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를 이끈 조쿠라 케이 박사는 “빗해파리는 면역 체계 중에서도 자신과 타 개체를 구분하는 자가 인식 메커니즘이 거의 없는 것을 발견했다”며 “두 빗해파리의 신경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연구하면 신경 기능의 기본 원리를 밝혀 재생 의학 연구에 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케이시 던(Casey Dunn) 미국 예일대 교수는 “빗해파리 두 마리가 합쳐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면서도 “다른 동물은 쉽게 융합하지 않기에 여전히 중요한 발견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진은 “두 개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 어떻게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앞서 빗해파리를 반으로 자르면 2시간 만에 상처가 회복되고, 이틀이 지나면 없어진 반쪽이 다시 자란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굳이 둘이 합쳐 하나가 되지 않고도 각자 재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추가 연구로 실마리를 찾겠다고 밝혔다.

하나로 합쳐진 빗해파리 두 마리. 자극을 주자 동시에 근육 수축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마리아나 로드리게스-산티아고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4), DOI: https://doi.org/10.1016/j.cub.2024.07.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