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대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서 사용되는 단백질을 바꿔 유전자 편집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뉴스1

가위가 더 작아지면서 원하는 부분을 더 정확하게 잘랐다. 대상은 옷이 아니라 유전자다.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이 줄어든 덕분이다. 앞으로 질병 유전자 교정이 더 정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진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에서 사용되는 단백질을 바꿔 유전자 교정 효율을 4배 이상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소즈(Nature Methods)’에 게재됐다.

유전자 가위는 절단 효소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 질병을 막거나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교정 기술이다. 1세대 징크 핑거에 이어 2세대 탈렌,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까지 개발됐다. 탈렌은 단백질로 원하는 유전자에 절단 효소를 결합시키며, 크리스퍼는 리보핵산(RNA)이 그 역할을 한다. 가이드 RNA가 특정 유전자가 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과 지퍼처럼 결합하면 캐스(Cas)9 효소 단백질이 잘라낸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지금까지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나 지질 나노입자를 활용해 세포에 전달했으나, 입자가 크고 복잡해 원하는 세포로 전달되지 못하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연구진은 캐스9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크기는 절반 정도인 단백질 TnpB에 주목했다.

TnpB는 방사선에 강한 세균인 ‘데이노코커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에서 유래한 단백질이다. 캐스9과 비슷해 특정 DNA 서열을 인식하고 자를 수 있지만 효율이 낮았다. 연구진은 TnpB가 세포핵으로 잘 이동하도록 구조를 최적화해 유전자 편집 효율을 최대 4.4배 높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킴 마르콰트 취리히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TnpB 기반의 유전자 가위 시스템은 크기가 작아 단일 바이러스 입자를 사용해 원하는 세포로 전달할 수 있다”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여러 바이러스 입자를 사용해야 하는 것과 큰 차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연구진은 추가로 TnpB 기반의 유전자 가위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했다. AI를 활용해 생쥐 간에서는 최대 75.3%, 생쥐 뇌에서는 65.9%의 유전자 교정 효율을 달성했다.

새 유전자 가위는 생쥐에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유전자 교정으로 생쥐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80% 가까이 낮출 수 있었다”며 “전 세계에서 약 3100만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고지혈증을 치료할 실마리를 찾았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처음 등장했다. 이후 유전자 교정의 한계를 해결하는 기술들이 잇따라 나왔다. 지난 6월 미국 아크 연구소와 일본 도쿄대 공동 연구진은 DNA 일부를 잘라내고 다른 부분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유전자 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처럼 DNA를 편집할 수 있지만, DNA 조각이 나오지 않아 부작용 우려가 적다.

참고 자료

Nature Method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2-024-02418-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