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조직에서 촬영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갈색)의 모습. 독일 튀빙겐대와 미국 에모리대 공동 연구진은 최근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뇌 속에서 증식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는 증거를 확인했다./래리 워커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비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 하나만 있어도 증식해 뇌 전체에서 신경세포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맞는다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독일 튀빙겐대와 미국 에모리대 공동 연구진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마치 광우병처럼 전염되며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드디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며 “알츠하이머병은 광우병처럼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증식해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인지 능력이 감소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뭉진 덩어리가 신경세포를 죽이는 원인으로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뭉쳐지면 오히려 신경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다만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하나의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건강한 생쥐의 뇌에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채취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를 이식했다. 이후 생쥐의 뇌를 해부해 뇌에서 일어난 변화를 확인했다. 씨앗을 땅에 심듯 동물에게 질병의 원인 물질을 넣어 실제 질병이 생기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생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증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씨앗으로 주입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를 중심으로 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도 덩어리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뇌 전체적으로 확산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마치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이 자가복제를 하듯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도 자체적으로 증식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는 강력한 증거”라며 “뇌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하나라도 생기면 알츠하이머병은 점차 심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문헌 조사를 통해 사람 사이에 알츠하이머병이 전염될 가능성도 확인했다. 사망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주입한 사람들 중 일부에서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한 사례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사례가 외부에서 유입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2006년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아밀로이드 베타를 지목한 이후 과학계와 의료계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지난 2022년 미네소타대 연구진의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 정황이 발견되면서 알츠하이머병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알츠하이머병은 다른 원인이 있으며,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는 원인이 아닌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번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비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명확해 보인다”며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뇌에 들어가는 과정을 차단하거나 늦추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q5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