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눈물의 여왕' 포스터./tvN

지난 5월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주인공 홍해인은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이라는 병을 앓았다. 전체 뇌종양의 12~15%를 차지하는 교모세포종은 뇌종양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암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이 드라마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으로 홍해인을 구할 방법을 찾았다.

베렌트 스나이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Zurich) 교수 연구진은 “항우울제인 보티옥세틴(성분명 보르티옥세틴)으로 교모세포종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마이클 웰러 취리히대학병원 교수는 “보티옥세틴은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이미 승인한 약물로 혈액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며 “안전하고 저렴해 복잡한 승인 절차 없이 표준 치료법에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홍해인은 독일의 암센터에서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T세포로 병을 치료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면역세포에 암을 찾는 능력을 추가한 CAR-T세포는 백혈병 같은 혈액암에만 효과가 있고, 교모세포종 같은 고형암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치명적인 교모세포종을 나타낸 그림./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

연구진은 대신 뇌와 혈관을 분리하는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에 직접 작용하는 항우울제나 파킨슨병 치료제, 항정신병제와 같은 약물을 선별해 뇌종양에 효과를 보이는지 살폈다. 교모세포종 환자는 절반 이상이 진단 후 1년 이내에 사망한다. 기존에 나온 항암제 대부분이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 40명의 종양 조직에 약 130개 약물을 처리한 결과, 항우울제로 쓰이는 보티옥세틴이 교모세포종 세포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티옥세틴은 뇌에 들어가 암세포의 분열을 억제하는 신호 전달 경로를 빠르게 활성화해 치료 효과를 냈다. 교모세포종에 걸린 생쥐에게 보티옥세틴을 투여해 효능을 확인했으며, 표준 치료법과 병행했을 때 더 효과를 보인다는 점도 검증했다.

현재 연구진은 두 가지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수술이나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와 같은 표준 치료법에 보티옥세틴을 더해 환자를 치료하거나, 환자마다 맞는 약물을 찾아내 맞춤형 치료를 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임상시험 단계에서 효과가 확인된다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교모세포종을 치료하는 물질을 찾은 사례가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환자가 보티옥세틴을 직접 구입해 복용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을 통해 정확한 용량과 효과를 확인해야 치료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24-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