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2013년 철창에서 탈출하는 마술을 선보이던 인도의 유명 마술사가 숨겨진 문으로 몰래 나오다 들켰다. 흥분한 관객들이 “속았다”며 마술사에게 달려들어 폭행 사건으로 번졌다.

제한 시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한 ‘탈출 마술’은 대부분 눈속임이지만, 간혹 마술 도중 실제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일본 과학자들이 마술 아닌 실제 상황의 실뱀장어 탈출 경로를 규명했다. 물고기에게 잡아먹힌 실뱀장어가 식도로 거슬러 올라가 아가미로 빠져나오는 과정을 X선 영상으로 포착한 것이다.

일본 나가사키대 연구진이 최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조영제를 주사한 실뱀장어 104마리와 포식성 민물고기인 남방동사리 11마리를 같은 수조에 넣었다.

남방동사리에 잡아먹힌 실뱀장어 32마리 중 28마리가 꼬리를 식도 쪽으로 향하고는 마치 자동차가 후진하듯 거꾸로 나오며 탈출을 시도했다. 포식자의 소화기 안에서 꼬리부터 역류하는 방식으로 아가미 쪽으로 이동한 뒤, 꼬리-몸통-머리 순으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렇게 남방동사리 아가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실뱀장어는 9마리였다. 탈출 성공률이 28%인 셈이다. 남방동사리 몸속에서 탈출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56초로 조사됐다.

실험 전에 연구진은 실뱀장어가 잡아먹히자마자 아가미로 탈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소화기에서 거슬러 이동해 아가미로 탈출하는 장면을 X선 영상으로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포식성 어류는 대부분 머리부터 통째로 먹이를 삼킨다. 이번 실험에서 탈출하지 못한 실뱀장어는 소화기 안에서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며 죽기까지 평균 211초가 걸렸다. 연구진은 “잡아먹힌 먹이가 포식자의 소화관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탈출하는지 경로를 밝힌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또 가벼운 실뱀장어일수록 탈출 성공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포식자의 배 속에서 치명적 환경을 견디며 빠져나오려면 운동 능력이 필수”라고 했다. 가늘고 긴 몸에 근력을 갖추면 탈출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