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망원경으로 추석 대보름달을 보면 우주인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잇따라 유인 달 탐사 계획을 내놓고 달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2026년 달 표면에 다시 우주인을 보내고 2028년엔 달 궤도에 유인 정거장인 문게이트웨이도 설치한다. 중국과 러시아도 2030년 달 남극에 유인 우주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달에 사람이 가고 기지가 세워지면 고속통신망이나 달 표면에서 정확한 시간과 위치를 알려주는 위성항법시스템(GPS) 같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달과 지구는 중력 같은 환경이 다른 만큼 독자적으로 시간을 맞춰야 한다.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 닐 애쉬비 연구원과 비주나트 파틀러 연구원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천문학 저널’에 지구와 달 사이 궤도에서 시간 기준을 세우는 방안을 소개했다.

◇달의 시간 지구보다 빨리 흘러

현재 달은 별도의 시간 체계가 없다. 달 탐사에서 사용하는 시간은 각국이 함께 쓰고 있는 세계협정시(UTC)를 기준으로 쓰고 있다. 1960~1970년대 미국과 러시아가 달 탐사를 독립적이고 간헐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엔 이런 방식이 별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기업까지 달로 가는 시대엔 정밀한 시간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계는 어디든 같은 시간을 가리킬 것 같지만 실제 우주에선 그렇지 않다. 빠른 속도로 운동을 하거나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시계 속도가 달라진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크거나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늦게 간다. 달은 지구보다 훨씬 작고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중력이 덜 작용한다. 달에서는 매일 56.02마이크로초(㎲, 1㎲는 100만분의 1초)씩 지구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 이 작은 차이가 별로 크지 않아 보이지만 우주선 착륙과 장거리 통신에선 매우 큰 결과의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달 표준시간은 달에서 GPS와 같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기반이다. 달 표면에서 일하는 우주인과 로봇을 모두 지원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NASA

GPS는 위성이 쏜 신호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GPS 위성에는 매우 정밀한 원자시계가 실려 있다. 달에 지구 GPS를 설치하면 중력에 따른 시차로 자칫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구와 달 사이에 더 정밀한 시간 약속이 필요해진 것이다.

NIST 연구진은 달에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구와 달 사이의 라그랑주점에서의 시계 속도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라그랑주점은 태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뤄 무중력 상태에 가까워지는 곳이다. 물체를 이곳에 가져다 놓으면 지구와 달을 따라 함께 공전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와 유럽우주국(ESA)는 본격적인 달 개척 시대를 앞두고 달과 달 주변 궤도에 정밀한 원자시계를 실은 위성을 배치해 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구의 GPS위성처럼 중력 환경을 반영한 정확한 시간 신호를 제공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달 시간 표준 선점 통해 영향력 확대 목적

이번 연구는 지난 4월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나사에 2026년까지 달의 시간 표준을 제정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에 따라 이뤄졌다. NIST는 미국이 달 표준 시간 제정을 주도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만들고 있다.

당시 백악관은 새로운 달 표준 시간이 반드시 네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구의 모든 시간대를 규정하는 세계협정시(UTC)와 논리적으로 일치하고, 정밀한 과학 연구와 우주선 착륙과 같은 매우 짧은 순간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정확성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구와 연락 두절됐을 때에도 스스로 복구할 수 있고 지구와 달을 넘어서 더 먼 우주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확장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백악관의 이런 지침은 미국이 재개한 유인 달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참여국들이 이 표준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미국은 42개국과 함께 달에 우주인과 탐사선을 대거 파견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NIST 주도로 마련되는 달시간 표준은 지구에서 사용되는 시간 표준인 세계 협정시(UTC)와 유사한 달 협정시(LTC)로 불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와 달리 달 시간대는 하나뿐이고 서머타임이 적용되지 않는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함께 쓸 달 시간 표준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유럽에서 먼저 나왔다. 유럽우주국은 지난해 달에 공통 시간 기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속도를 내는 건 미국이다. 미국은 달 협정시 제정을 통해 지구와 달 사이 우주 공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달 협정시 제정에는 나사 외에도 미 상무부, 국방부, 국무부, 교통부 등 여러 부처가 참여한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 인도가 지구 저궤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은 지구와 달 사이 공간으로 활동 공간을 옮겨가고 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건설된 우주기지와 달에서 작업하고 있는 우주인 상상도. /NASA

◇달 자원 탐사 길잡이 될 것

달 환경에 맞는 정확한 시간과 위치 정보는 정밀한 달 착륙과 효율적인 자원 탐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달에는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사용되는 희토류 원소는 물론이고 물과 헬륨-3등 미래 기술에 쓰이는 자원이 대량으로 묻혀 있다. NIST 연구원은 “새 기술의 핵심은 착륙 오차부터 수m 이내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 전용 GPS’가 없다면 마치 GPS나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1969년 미국의 유인 달탐사선 아폴로11호는 GPS 없이 달에 착륙했지만 당시 활동반경은 수백m에 머물러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달 기지가 세워지고 장기 탐사가 이뤄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르테미스 협정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인 달 탐사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두 나라도 동참하길 기대한다. 파틀러 연구원은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달 표준 시간대를 제정하면 까다로운 달 환경에서 활동하는 다른 우주 탐사 국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각국 우주선 간의 통신, 데이터 전송, 착륙, 도킹과 내비게이션이 훨씬 더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로운 달 표준 시간 체계는 장기적으로 달을 넘어 태양계 탐사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은 달 표준시를 제정하는 대로 화성 시간, 토성 시간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참고 자료

The Astronomical Journal(2024), DOI: http://doi.org/10.3847/1538-3881/ad643a

Science(2024), DOI: http://doi.org/10.1126/science.zjcnvdf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0185-z

The White House https://www.whitehouse.gov/ostp/news-updates/2024/04/02/white-house-office-of-science-and-technology-policy-releases-celestial-time-standardization-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