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주행’이라고 불러요. 그럼 지도, 운전자, 자동차의 3요소에서 운전자를 뺀 걸 뭐라고 할까요?”

“자율주행이요!”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LG디스커버리랩 2층 교육장에는 인천 동산중학교에서 온 1학년 학생 22명이 LG디스커버리랩 조숙경 연구리더의 지율주행 기술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율주행은 어른들도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조 연구리더는 중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자율주행의 원리를 설명했다. 복잡한 기술 용어 대신 손에 쥘 수 있는 센서와 주행 지도 같은 놀이도구를 이용한 설명에 중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디스커버리랩 서울' 교육장에서 인천 동산중학교 학생들이 자율주행과 SLAM 기술을 체험형 학습을 통해 배우고 있다./이종현 기자

이날 조숙경 연구리더와 크루가 소개한 기술은 ‘SLAM’이었다. SLAM은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의 약자로 로봇에 부착된 센서를 이용해 주변 환경의 지도를 만드는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이다. 조 연구리더가 LG전자(066570)가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 ‘클로이’를 작동시키자 교육장을 크게 한 바퀴 돌면서 내장 센서로 연구실의 실내 주행 지도를 만들었고, 이 모습을 학생들이 지켜봤다.

조 연구리더의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센서가 장착된 미니카를 격자 위에서 직접 옮기며 지도의 개념을 이해했다. LG디스커버리랩이 직접 만든 SLAM 로봇을 조종하면서 새로운 공간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도 체험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긴 수업이었지만 딴청을 피우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SLAM 로봇을 조종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해보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한 학생은 “학교에서는 SLAM에 대한 개념 설명만 들었는데, 여기서는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원리를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 ‘AI 체험 교육’ 과학관

LG디스커버리랩은 LG그룹이 만든 청소년 대상 인공지능(AI) 교육 기관이다. 2021년 10월 부산시 진구 연지동에 LG디스커버리랩 부산을 열었고, 2022년 11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을 세웠다.

LG는 원래 ‘LG사이언스홀’이라는 과학관을 오랫동안 운영했다. LG사이언스홀은 1987년 LG가 민간 기업 최초로 만든 과학관으로 종합 과학 전시관 역할을 했다. LG사이언스홀을 닫고 LG디스커버리랩을 새로 열면서 과학관의 형태와 운영 방식도 싹 바뀌었다.

박산순 LG디스커버리랩 교육사업팀장은 “LG사이언스홀을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서울시에 생긴 과학관 1호였고, 그때는 과학관이 무엇인지 개념을 설명해야 해기 때문에 종합 과학 전시관으로 지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종합 과학 전시관이 너무 많고, LG가 가장 잘 하는 AI를 주제로 잡았는데 단순한 전시로는 AI 기술을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에서 학생들이 실제 체험을 통해 자율주행 센서의 원리를 배우고 있다./LG

새로 문을 연 LG디스커버리랩은 전시의 비중을 확 줄이고, 체험과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LG의 AI 기술을 로봇, 시각지능, 언어지능, 디지털휴먼, 데이터 지능 등 5개 분야로 구분하고, 분야별로 LG 계열사의 최신 AI 기술을 적용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LG 계열사의 AI 연구자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LG디스커버리랩에 전달하면, LG디스커버리랩에서 근무하는 사범대 출신의 교육 전문가들이 이를 중학생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바꿨다.

한혜연 LG디스커버리랩 교육사업팀 책임은 “매년 LG 계열사가 AI 기술 개발 현황표를 보내오면 이걸 받아서 1년 정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며 “우리의 목표는 AI가 변화시킬 미래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LG계열사들의 AI 기술 한 자리에

언어지능을 가르치는 교육장에서는 소설처럼 긴 글에 중간중간 빈칸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안에 들어갈 말을 채우는 교육이 진행됐다. ‘AI 교육에 웬 빈칸 채우기?’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사실 빈칸을 채우는 건 대화형 AI인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처리(LLM) 모델의 기초가 되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 기술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트랜스포머는 지금은 일상이 된 LLM의 기초 원리로, 문장이나 단어의 관계를 추적해 맥락과 의미를 학습하는 AI 기술이다.

박산순 팀장은 “언어지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핵심은 ‘추론’이라는 개념”이라며 “챗GPT 같은 AI 기술이 트랜스포머에 기반하는데, 그 핵심 원리를 빈칸 추론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에서 학생들이 실제 로봇이 어떻게 사물을 인지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 LG 제공

언어지능 교육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학생들이 컴퓨터를 통해 접속한 화면이었다. ‘LG AI Research’라는 로고가 선명한 화면은 LG AI연구원이 직접 만든 기계독해(MRC) 플랫폼이었다. MRC는 LG AI연구원이 처음 만든 대화형 AI 플랫폼으로, 사람이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찾아준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익숙해졌지만, LG AI연구원의 MRC는 챗GPT가 등장하기 전부터 개발이 진행된 프로젝트다. 지금은 LG 연구원들이 논문을 요약하거나 할 때 쓰는 내부용 플랫폼인데,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외부로는 유일하게 LG디스커버리랩에서만 공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LG디스커버리랩에서는 스마트팩토리에서 제품의 불량을 판정하는 양불판정 AI 머신, LG의 초거대 AI ‘엑사원’, LG의 데이터 지능 솔루션 ‘DAP MLDL’을 이용한 데이터 예측 체험도 가능하다. LG의 첨단 AI 기술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박산순 팀장은 “LG디스커버리랩을 기획하면서 LG가 가장 집중하고 잘 하는 걸 하자고 했고, 그렇게 결정된 게 AI였다”고 말했다.

◇AI 전시관에서 안도 다다오 체험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은 100%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기 중에는 학교나 학급단위로 단체 교육을 진행하고, 방학에는 개별 학습자나 동아리 모임 등을 통한 개인 교육도 진행한다. 작년에만 2만4000명이 찾아와 교육을 받았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의 또다른 특징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 안에 있다. 내부 공간 인테리어는 LG디스커버리랩이 했지만, 건물 곳곳에서 안도 다다오의 특징으로 유명한 노출 콘크리트를 만날 수 있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 내부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에 위치한 LG디스커버리랩은 1층은 전시 공간과 교육장, 2층은 교육장으로 운영되고 있다./LG

LG디스커버리랩 서울은 LG아트센터, 서울식물원과 나란히 있어 가족 단위로 찾기 좋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에 아이들을 맡기고 부모들은 주변 식당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유를 즐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포공항과 가깝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한 번에 올 수 있어 지방에서 찾아오기도 쉽다. LG디스커버리랩 서울 직원들이 추천하는 맛집은 LG아트센터 3층에 있는 ‘모담다이닝’이다. 한정식을 하는데 가격대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서울식물원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일품이다. 가수 테이가 운영하는 수제 햄버거 매장인 테이스티버거도 학생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과슐랭 별점

자체 콘텐츠(3/3) ★★★ 체험하고 배우는 과학관 2.0의 모범사례

주변 연계(2/2) ★★ 지방에서도 찾기 좋은 서울 과학관, 식물원은 1+1

전체 평가(5/5) ★★★★ 내가 중학생이었다면 정말 좋겠네

<미슐랭(미쉐린) 가이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안내서입니다. 조선비즈는 미슐랭 가이드처럼 국내 기업과 기관이 운영하는 과학관과 박물관의 콘텐츠 ‘맛’을 평가하는 과슐랭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과학관, 박물관에 담긴 과학 정보와 함께 기업 직원들이 추천하는 근처의 맛집도 소개합니다. 과학과 문화를 배우며 맛집도 찾는 여행 가이드로 활용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