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전파망원경들을 연결한 가상의 망원경인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사상 최고 해상도로 M87 은하 중앙에 위치한 M87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이끈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셰퍼드 돌먼 박사는 “해상도를 높여 블랙홀 주변 영역까지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며 “블랙홀이 어떤 물질을 끌어당기고 축적하는지, 어떻게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주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고도화되고 있다. 인류는 지난 2019년 블랙홀을 실제로 관측한 데 이어 더욱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미지의 시공간을 탐구하는 중이다.

그래픽=백형선

◇주파수 확장으로 해상도 높여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협력단(EHT Collaboration)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EHT의 관측 전파를 확장해 역대 최고 해상도로 M87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천문학 저널’에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65기관 300여 연구자가 참여한 EHT 협력단은 2019년 4월 10일 5500만 광년(1광년은 약 9조4600억㎞로 빛이 1년 동안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떨어진 M87 중심부의 블랙홀 관측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이번 연구로 블랙홀의 모습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협력단에 따르면 기존의 M87 블랙홀 관측은 1.3㎜ 파장(230㎓)을 이용한 것으로, 블랙홀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 생긴 고리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번 연구에서는 관측 전파를 0.87㎜(345㎓)로 확장해 이미지를 더 세밀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블랙홀 관측에 미국, 칠레, 스페인, 남극 등에 위치한 10개의 대형 전파망원경을 연동시킨 가상의 망원경 EHT가 사용됐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전파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지름이 지구만큼 큰 전파망원경이 필요한데, 실제로 그런 크기의 단일 망원경을 구축할 수 없어 전 세계의 전파망원경을 동시에 가동해 같은 효과를 유도했다.

연구진은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더 짧은 파장으로 빛을 관측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통상 이미지의 해상도를 높이려면 더 큰 망원경을 사용해야 하는데 EHT는 관측소 간 거리를 넓히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파는 파장이 짧아질수록 대기 중의 수증기에 쉽게 흡수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연구진은 “장비의 대역폭을 늘리고 모든 전파망원경이 위치한 지역에서 날씨가 좋은 시점을 기다려 EHT의 감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에 EHT 망원경 중 ALMA와 APEX 등 6개만을 활용해 M87 블랙홀을 해상도 19마이크로아크초(microarcsecond)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모든 EHT 망원경을 동원하면 해상도를 13마이크로아크초까지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구에서 달 표면에 놓인 병뚜껑을 볼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다.

그래픽=백형선

◇인류가 보는 것은 ‘블랙홀의 그림자’

과학자들이 관측하는 것은 사실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방출한 에너지다. EHT 협력단이 공개한 사진 속 검은색 원은 블랙홀이 아닌 주변의 빛으로 인해 윤곽을 드러낸 블랙홀의 그림자다. 실제 블랙홀은 사진 속 검은 원의 중심부에 점으로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기술로는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홀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은하 중심부에서 뻗어나오는 강력한 에너지 분출 현상인 제트(jet)를 관측함으로써 블랙홀에 대해 연구하기도 한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들은 지구에 유성이 떨어질 때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듯 뜨거운 열을 발생시키고,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가 강력한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면서 분출되는 것이 제트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지난해 M87 블랙홀 제트의 자기장 강도 추정에 성공했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시작된 블랙홀에 대한 연구는 관측 기술이 발달한 최근에 더욱 활발해졌다. 2018년 타계한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은 별들의 최후이자 우주 탄생의 시작이기도 하다”라며 “블랙홀을 이해하면 우주의 시작과 끝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