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조용한 살인마’로 불린다. 조기 발견이 어려워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하다. 미국 연구진이 췌장암을 치료할 새로운 방법의 효과를 동물실험에서 확인했다. 암세포에 시큰둥하던 면역세포에게 강력한 병원체라고 속여 총공격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미국 애머스트 매사추세츠 주립대 연구진은 면역 경로를 활성화하는 물질과 치료제를 결합한 새로운 췌장암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공개됐다.
췌관 선암은 췌장암의 90%를 차지하는데 5년 생존율이 13%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낮은 생존율의 원인이 종양을 둘러싼 미세환경에 있다고 봤다. 종양 조직은 안에서 얼기설기 혈관을 만들어 증식하지만, 워낙 조직이 조밀하다 보니 주변 세포에서 혈관이 이어지지 못한다. 이로 인해 면역세포나 약물이 침투되기 힘들다. 암은 면역 체계를 속여 종양이 정상적인 세포 덩어리라고 인식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결국 적군이 침투했는데 방어군이 그쪽으로 가지도 못하고, 만나도 아군으로 착각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방어군을 적군에 집결시킬 방법을 찾았다. 마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는 것처럼 암 주변 조직을 속여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면 항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연구진은 세포를 잘 통과하는 지질 나노입자 안에 면역 반응을 유발할 물질들을 넣었다. 나노입자에 들어간 성분은 인터페론 유전자 자극제(STING)와 TRL4 경로를 자극하는 물질들이다. 인터페론 유전자 자극제 경로는 신체의 바이러스 감염을 인식한다. TRL4는 선천 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STING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두 물질을 담은 지질 나노입자와 종양의 노화를 촉진하는 항암제를 쥐에 투여한 결과, 9마리 중 8마리에서 종양 크기가 줄어들었다. 특히 2마리는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진은 “종양이 완전히 사라진 반응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쥐의 생존 기간이 단일 치료법에 비해 수개월 연장됐다”고 밝혔다.
다만 치료제 투여를 중단하자 종양이 다시 나타났다. 마커스 루스케티 매사추세츠 주립대 의대 교수는 “종양과 함께 면역 체계를 표적으로 삼는 복합 요법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췌장암을 넘어 대장암이나 폐암, 간암, 담관암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노입자 속 물질의 비율을 바꿔 환자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할 수도 있다. 프라바니 아투코랄레 매사추세츠 주립대 의대 교수는 “물질 비율이나 약물의 조합, 표적 분자를 환자별로 맞춤화할 수 있다”며 “암 치료법 대부분은 개인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j9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