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미쉐린) 가이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안내서입니다. 조선비즈는 미슐랭 가이드처럼 국내 기업과 기관이 운영하는 과학관과 박물관의 콘텐츠 ‘맛’을 평가하는 과슐랭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과학관, 박물관에 담긴 과학 정보와 함께 기업 직원들이 추천하는 근처의 맛집도 소개합니다. 과학과 문화를 배우며 맛집도 찾는 여행 가이드로 활용하길 바랍니다.>
서울역에서 3시간 40분 남짓 KTX 열차를 타고 가면 진주역이 나온다. 지리산을 위에 둔 탓에 경부선을 타고 가다 밀양, 창원을 거쳐 돌아와야 해 거리에 비해 이동 시간이 길다.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에 생겼지만, 여전히 항공편은 선택지로 두기 어려울 만큼 운행 횟수가 적다.
진주역에서 차로 10분, 버스로 25분 정도 가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가 나온다. LH는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2015년 진주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겼다. 주소지는 진주시 충무공동. 충무공(忠武公)이라고 하면 흔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지만 진주에서는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을 일컫는 말이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김시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킨 영웅이다.
서울에서 기차와 차로만 4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달려온 건 LH 본사에 있는 토지주택박물관 때문이다. 우리 주거건축문화와 토목건축기술을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인 토지주택박물관은 1997년 경기도 분당에 처음 문을 열었고, 2015년 LH 본사 이전에 맞춰 진주로 내려왔다. 2022년에 1층에 주택도시역사관을 새롭게 만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연탄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의 만남
토지주택박물관 1층 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지어진 영단주택과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든 아파트 발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국은 2020년 기준 전체 주택 1850만호 가운데 63%인 1160만호가 아파트다. 전체 주택 3채 중 2채가 아파트인 셈. 단독주택은 389만호, 다세대주택은 223만호에 불과하다. 1980년만 해도 단독주택이 465만호, 아파트가 37만호였지만, 40년 만에 아파트가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그 출발은 1962년 준공한 서울 마포아파트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1962년 마포형무소 농장 부지를 구입해 건설한 마포아파트는 말 그대로 아파트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 전에도 아파트는 있었지만 마포아파트는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라는 점에서 아파트 공화국의 출발점으로 부를 만 하다. Y자형 주거동이나 방과 거실, 부엌, 베란다, 수세식 화장실이 구비된 구조, 온돌방을 제외한 바닥에 인조석을 깔고, 욕실 천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 여러 면에서 현대적인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마포아파트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파트였다. 처음에는 오늘날 아파트처럼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까지 계획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포기했다. 10층을 6층으로 낮추고, 중앙난방식을 연탄 보일러식으로 바꿨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낭비라는 비판에 연탄 보일러식을 택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일반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맞는 새로운 연탄 보일러가 필요했다. 지금의 귀뚜라미보일러인 신생보일러공업사가 마포아파트에 맞는 연탄 보일러를 만들어 납품했다. 전시관에는 귀뚜라미보일러가 복원한 마포아파트의 연탄 보일러를 직접 볼 수 있다.
수세식 화장실 설치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마실 물도 부족한데 웬 수세식 화장실이냐는 말이 나왔다. 서울시 수도국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하지만 수세식 화장실은 계획대로 설치됐다. 화장실만큼은 지금의 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이외에도 마포아파트는 단지 안에 정원과 상가, 놀이터, 경로회관, 관리사무소를 조성해 현대적인 아파트의 모습을 갖췄다. 전시관에는 당시 마포아파트의 집 내부를 모델하우스처럼 재현해 놨다.
전시관은 1991년 재건축을 위해 마포아파트가 철거될 당시 가져온 다양한 건축자재를 전시하고 있다. 강승호 토지주택박물관 학예사는 “국내 최초 단지형 아파트인 만큼 여러 건축자재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 직원들이 직접 마포아파트를 찾아가 철거 전에 최대한 많은 건축자재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섰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서울 곳곳에 아파트를 지었다. 마포아파트의 성공으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바뀐 효과도 컸다.
마포아파트의 총 대지면적은 1만 4008.8평이었는데 같은 면적에 단독주택을 짓는 것보다 건설호수와 수용가능인구가 2~3배는 많았다. 한정된 땅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가장 확실한 대안이었다. 이후 여의도 시범아파트, 동부이촌동의 한강맨션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등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흙벽돌이 고압벽돌로…더 빨리 더 높이
1층 전시관에는 눈길을 끄는 사진 하나가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갓 만들어낸 흙벽돌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쓰다듬는 사진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흙벽돌 제작기를 들여왔다. 흙과 석회, 시멘트를 섞어서 만든 흙벽돌은 전쟁으로 무너진 주택을 복구할 희망이었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은 실제로 흙벽돌을 사용해 지은 주택에 ‘희망주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다 할 건축 기술이나 자재가 없던 한국에 흙벽돌 제작기는 그야말로 희망이었다. 희망주택은 ‘밭 전(田)’자 모양으로 면적은 9평이었다. 방 2개와 마루, 현관, 부엌에 화장실까지 뒀다.
대한주택영단은 1953년부터 1961년까지 희망주택을 포함해 6500여호의 공영주택을 지었다. 2층, 3층 구조의 부흥주택과 국민주택도 지었다. 전시관에서 희망주택을 비롯해 한국전쟁 직후 지어진 주택의 구조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시대가 열리자 건설·토목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흙벽돌은 20년 만에 자취를 감췄고 대신 고압벽돌이 등장했다. 대한주택공사 연구소가 개발한 고압벽돌은 모래와 생석회 혼합 재료를 형틀에 넣고 고압으로 성형한 후 고압증기로에서 5~8시간 양생해 만들었다. 1976년에 나온 고압벽돌은 둔촌, 잠실, 화곡 지역의 아파트 건설에 쓰이면서 대단위 주택단지 시대를 열었다.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10층을 포기하고 6층 높이로 지었지만, 불과 10년 뒤인 1972년에 건설된 남산외인아파트는 16층과 17층이었다. 옥상에는 비상탈출을 위한 헬기장까지 뒀다. 1968년 지어진 한남동 힐탑아파트는 11층에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특히 힐탑아파트는 필로티와 옥상정원, 줄무늬 외관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건축 기법으로 화제가 됐다. 강 학예사는 “힐탑아파트의 줄무늬 외관은 거푸집에 새끼줄을 깔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만든 것”이라며 “근대 건축물에 전통적 요소를 가미한 실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최대 55평의 중대형아파트로 지어진 한강맨션아파트는 양변기, 알루미늄 창문을 넣었고, 중앙공급식 중온수 보일러도 설치했다. 단지 안에 쇼핑센터와 경비실을 배치했다. 외벽은 회색으로 칠했는데 이 색은 뒤에 ‘주공회색’이라고 불리며 주공아파트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아파트 선호가 커지면서 아파트 건설은 속도전이 됐다. 반포아파트(남서울아파트)는 8년, 잠실 대단지 아파트는 3년 만에 지었다. 대한주택공사가 ‘1일 100호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속도전을 한 덕분이었다. 조립식 아파트와 타워크레인, 시멘트혼합기 같은 새로운 건설 기술도 이런 속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신석기시대 움집도 과학이다
2층 전시관은 우리 주거문화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실물에 가까운 다섯 채의 집을 재현해 관람객이 실제 우리 건축 기술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건 신석기인이 살았던 움집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동굴에서 지냈던 구석기인과 달리 신석기인은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든 후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로 서까래를 올려 움집을 지었다. 억새나 갈대를 엮은 지붕을 서까래 위에 올려 비와 바람을 피했다. 지금으로 치면 반지하 형태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구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축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삼국시대에는 기둥을 땅 위에 그냥 세우지 않고 주춧돌(초석)을 놨다. 주춧돌 덕분에 기둥에 전달되는 땅의 습기를 막을 수 있었다. 온돌로 불리는 구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추운 북쪽의 고구려 사람들은 방 내부에 아궁이를 놓고 ㄱ자형 쪽구들을 사용했다. 이후 온돌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전시관 한 편에는 토지주택박물관이 남한산성을 발굴하던 중 출토한 통일신라의 대형기와와 경주에서 발굴된 무늬 벽돌도 있다. 모두 삼국시대의 유물들로 당시의 아름다운 건축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LH는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유물이 나오면 전문 연구인력을 보내 유물만 수습하면 되는지, 아니면 공사를 포기하고 유적지로 보존할지 판단할 정보를 모아 관련 문화재 당국에 알렸다. 토지주택박물관 학예사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울산시 약사동에서 발견한 통일신라시대 제방 유적은 과거 토목 건축 기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약사천을 가로막아서 만든 이 제방은 차수벽에 내력벽을 덧대어서 쌓았고, 점성이 강한 흙을 쌓아서 구조물을 만들 때 중간에 나뭇가지나 잎사귀를 깔아 흙이 밀리지 않게 하는 부엽공법도 쓰였다.
토지주택박물관은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공휴일과 5월 1일 근로자의 날, 10월 1일 LH 창립기념일에는 쉬고, 관람료는 무료다. 단체관람을 미리 예약하면 전시품과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할 수 있다.
여러 건축 자재를 소개하고 있는 2층 전시관에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도 적지 않다. 직접 다양한 흙 종류를 확인하고, 기와 지붕을 만들 수도 있다. 방학 시즌과 봄, 가을에는 박물관 대학, 어린이·가족, 성인 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교육 프로그램은 박물관 홈페이지 공지 등을 확인해서 신청하면 된다.
토지주택박물관이 있는 진주는 다양한 문화재와 먹거리가 많은 도시다. 박물관 근처에서 맛집을 찾는다면 진주냉면산홍 본점이 제격이다.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함께 3대 냉면으로 불리는 진주냉면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진주 현지인들이 근래 가장 선호하는 진주냉면 집이기도 하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파는 남매식당도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커플들에게 인기다. 진주 구도심 쪽으로 가면 서울의 유명 콩국수 맛집인 여의도 진주집, 서소문 진주회관과 남매 관계인 진주냉콩국수 가게가 있다. 진주중앙유등시장의 하동집(복국), 천황식당(육회비빔밥), 수복빵집(찐빵)도 진주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식당이다.
토지주택박물관만 방문하기 위해 진주를 찾는 건 어불성설이다. 진주의 여러 관광지와 묶어서 다니는 게 좋다. 진주성과 성 안의 국립진주박물관은 강추하는 여행지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특화박물관으로 꾸며져서 아이와 함께 하는 가족 관람객들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진양호 일몰과 강주연못 연꽃도 진주 시내에서 가까운 여행지다. 차로 40~50분 정도면 삼천포 케이블카, 통영 루지 등도 즐길 수 있다. 참고로 진주 지역 최대 축제인 남강유등축제는 10월 5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과슐랭 별점
자체 콘텐츠(3/3) ★★★ 신석기 시대 움집부터 아파트 공화국의 탄생까지, 집의 모든 것
주변 연계(1/2) ★ 역에서도, 시가지에서도 멀다 멀어
전체 평가(4/5) ★★★★ 위치 빼고 다 좋아…내 집 마련 전에 아파트 공부부터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