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공동 연구진이 전자기기의 핵심 소재인 기판을 자유자재로 접고 형태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2019년 삼성은 세계 최초로 구부러지는 폴더블(foldable)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애플도 2026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화면이 접히거나 구부러질 때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번 폴더블 기판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운룡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마이클 디키(Michael Dickey)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화학·생체 분자공학부 교수 공동 연구진은 스크래치(흠집)에 강한 나노미터(㎚, 10억분의 1m) 두께의 폴더블 투명 전극과 회로를 제작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 논문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포스텍 공민식 박사와 노스케롤라이나 주립대의 만 호우 봉(Man Hou Vong) 박사가 공동 제1 저자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금속 산화물 박막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금속 원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형성된 금속 산화물 박막이다. 이 박막은 부도체와 반도체, 도체 간 변환이 가능하고, 투명성과 내구성, 유연성이 뛰어나다.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wearavle) 기기나 구부러지는 폴더블 기기에 사용하고 있으며, 빛이나 화학 물질과의 반응성이 커 광학 센서와 가스 센서에도 유용하다.
금속 산화물 박막의 응용 분야를 더 넓히려면 고순도의 박막을 고밀도·대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용액 상태에서 박막을 합성하는 기존 방법은 대면적을 구현할 수 있으나 고밀도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체를 기판에 증착하면 고순도 박막을 제작할 수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 제한적이고, 공정 속도가 느리다.
연구진은 공기 중에 노출된 금속 표면에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얇은 산화막에 주목했다. 액상 금속은 표면장력이 매우 커 기판 위에 얇게 펴지기보다는 물방울처럼 다시 뭉친다. 표면장력은 액체가 되도록 작은 면적을 취하려는 힘을 말한다. 연구진은 액체 상태의 금속을 얇게 기판 위에 얹어 자연적으로 산화막을 형성시키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번 기술은 균일한 금속 산화막을 연속적으로 인쇄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로 갈륨(Ga), 인듐(In), 알루미늄(Al)의 산화막을 다양한 기판에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갈륨 산화막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막을 만들거나, 갈륨 산화막 내부에 금이나 구리를 증착해 전도성을 부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산화물에 금속을 증착하면 산화물과 금속 간 접착력이 약하지만, 이번 기술로 인쇄된 산화막은 금이나 구리가 내부에 확산돼 접착력이 뛰어났다. 연구진은 섭씨 800도 고온에서 안정적이고, 구겨지거나 완전히 접어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성이 높은 두께 10㎚ 미만의 폴더블 투명 회로를 구현했다.
정운룡 교수는 “자연 산화막에 연속 프린팅 공정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스크래치에 강한 나노 두께의 폴더블 투명 전극과 회로를 만든 최초 사례”라고 밝혔다. 공민식 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산화막은 기계적·전기적 성능이 독특해 다양한 추가 연구가 기대된다”며 “여러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p3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