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미쉐린) 가이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안내서입니다. 조선비즈는 미슐랭 가이드처럼 국내 기업과 기관이 운영하는 과학관과 박물관의 콘텐츠 ‘맛’을 평가하는 과슐랭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과학관, 박물관에 담긴 과학 정보와 함께 기업 직원들이 추천하는 근처의 맛집도 소개합니다. 과학과 문화를 배우며 맛집도 찾는 여행 가이드로 활용하길 바랍니다.>
누리호, 나로호, KF-21 보라매 전투기.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한국 과학의 쾌거 중 상당수는 항공우주산업에서 나왔다. 보잉·에어버스 항공기들의 부품을 하청 생산하던 한국은 이제 대형 항공기 제작사들의 공동 개발 파트너이자 11번째 초음속 항공기 개발국 반열에 올라섰다.
항공우주산업이 향후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떠오르면서 항공산업의 요람 경남 사천도 힘찬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연초에는 신설 우주항공청 유치전에서 승리했는데, 한국 유일의 완성 항공기·우주선 제조업체인 한국우주항공산업(KAI)과 그 협력 업체들이 사천에 자리 잡은 이유가 컸다.
사천은 미래 세대에게 항공우주산업의 꿈을 심어줄 요람도 갖추고 있다. 바로 KAI가 2002년 세운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이다. 한국 항공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의 장이자, 인류의 숙원이었던 ‘하늘을 나는 꿈’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교육 공간이다.
◇한국전 활약 군용기부터 현재 공군 훈련기까지
박물관 입구 매표소는 박물관뿐 아니라 바로 인접한 사천 첨단항공우주과학관의 입장권까지 함께 판매한다. 가격 차이가 크지는 않기 때문에, 어린이와 함께 방문했다면 과학관의 입장권까지 함께 구매하길 권한다. 박물관과 과학관은 하반기를 목표로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합이 완료되면 입장권도 통합 발권될 예정이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온갖 군용기와 전차, 대공미사일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항공우주박물관인지 안보전시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하다. 야외 전시장에는 실물 항공기 26대가 있다. 상당수는 유엔한국참전국협회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일부 기종은 항공기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앞쪽의 전시관에 들어서면 좌측에는 자유수호관, 우측에는 항공우주관이 있다. 자유수호관은 과거 여의도에 있던 자유수호관을 옮겨온 것으로, 일제 시대 이후부터 한국전쟁 당시까지 쓰이던 각종 무기류와 장구 등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항공우주관에서는 항공기 관련 전시품과 항공기의 원리, 발전사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항공우주관의 1층은 각종 항공기 기종과 부품들이 전시돼 있다. 모형의 상당수는 공군이 사용한 군용기인데, 이 역시 한국 항공산업이 민수보다는 핵심 방위산업으로서 발전해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앙 홀 뒤편으로는 비행의 원리와 각 부품의 역할이 잘 설명돼 있으니 놓치지 말자.
2층의 테마는 ‘우주’다. 우주 개발사와 인공위성, 우주센터 등의 모형이 있다. 인류의 거대한 족적에 비해 한국의 우주 개발 전시품은 아직 한 켠에 모아둔 정도인데, 후발주자로 뒤늦게 뛰어든 결과이다. 한국이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인 뉴스페이스 시대에서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이곳 전시품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항공우주관에서 옆 건물 에비에이션 센터로 발걸음을 옮기면 1층에 항공산업관이 나온다. 항공산업이 얼마나 고부가가치 산업인지, 현재 발전 동향은 어떤지 간략히 둘러볼 수 있다. 중앙의 영상관은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공개됐던 항공 모빌리티와 미래 공중전 영상 등이 상영된다. 3D(입체)와 가깝게 만들었고 상영되는 화면이 커 약간 어지러울 수 있으니 미리 주의하는 것이 좋다.
중앙부는 KAI가 직접 개발한 KT-1, T-50 훈련기 모형과 T-50을 기반으로 만든 FA-50 경전투기 모형이 차지하고 있다. 사천공항에는 공군 조종사 ‘빨간 마후라’의 둥지인 공군 제3훈련비행단이 있다. 이곳은 공군의 비행교육과정 중 중추적인 역할인 중등비행과정과 공중기동기 고등비행과정을 맡고 있다. 여기서 사용하는 모든 훈련기를 KAI가 만들었기 때문에 훈련기 모형이 유독 많다. T-50의 경우 조종석 모형도 별도로 갖춰 어린이들이 사진을 찍기 좋은 포토존으로 꾸몄다.
◇항공과학 체험학습의 장 ‘에비에이션 센터’
항공우주박물관의 백미는 에비에이션 센터 2층의 에비에이션 캠프 체험관이다. 박물관은 항공기에 적용되는 53개의 과학적 원리 중 25개의 원리를 뽑아 체험·교육 부스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KAI의 최두열 부장은 “항공기는 과학기술의 집약체인 만큼 훌륭한 과학 교육 수단이기도 하다”며 “물리학·지구과학·화학 등의 과학적 원리와 기하학, 미·적분 등 수학 원리 등을 집대성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려면 기체를 띄우는 힘인 양력(揚力)과 이끄는 힘인 추력(推力)이 각각 반대로 작용하는 중력(重力)과 항력(抗力)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압력이 낮아진다는 베르누이의 원리다. 비행기 날개 위의 압력은 낮고 아래의 압력은 높아야 비행기가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 이 조건에 맞는 최적의 비행기 날개 형상은 무엇일까.
그 고민에서 나온 것이 눈물 형태의 곡선이다. 비행기 날개의 단면을 보면 위는 불룩 솟아 있고 아래는 평평하다. 이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면 위쪽이 아래쪽보다 공기가 빨리 흐른다. 이렇게 되면 날개 위쪽이 아래쪽보다 공기 압력이 낮아져 비행기를 뜨게 하는 양력이 발생한다. 양력이 비행기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보다 크면 비행기는 공중에 뜰 수 있다.
체험관은 여러 형태의 날개를 통해 같은 바람에서 어떤 날개 형태가 가장 안정적으로 뜰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같은 눈물 형태의 날개를 정밀하게 설계하려면 수학의 미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산화와 환원이라는 화학 원리 역시 비행기의 안전한 비행에 큰 역할을 한다. 철판을 용접하거나 리벳(대갈못)으로 붙이면 작은 빈틈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거나 빠른 속도로 비행할 때 고압·고온의 환경 때문에 빈틈이 커져 비행기가 분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항공기에 사용하는 금속을 화학적으로 산화·환원시키는 방법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빈틈의 여지를 최대한 만들지 않도록 한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사용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바퀴, 랜딩기어는 비행기 전체를 지탱하면서도 어떻게 쉽게 움직이는 것일까. 밀폐된 용기의 물에 압력을 가하면, 깊이가 같은 모든 지점에 같은 크기의 힘이 전달된다. 따라서 좁은 통로에는 넓은 통로보다 강한 힘이 전달돼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이를 ‘파스칼의 원리’라고 하는데, 비행기 역시 이 원리를 적용한 유압장치로 비교적 적은 힘으로도 수시로 랜딩기어를 오르내리게 한다.
이 밖에도 에비에이션 캠프에서는 비행기를 설계하는 컴퓨터 지원 설계(CAD)나 비파괴검사 키트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체험관의 비행기 시뮬레이터는 실제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델이라고 한다. 시뮬레이터는 항공기 이·착륙은 물론 추락과 고속 비행 상황에서 조종사가 기절하는 상황까지 현실과 최대한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다. 체험형 교육도 알차지만, 사전 예약 시 KAI의 비행기 공장 견학도 가능하다.
아쉬운 점은 체험 프로그램을 누구나 언제든 즐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에비에이션 캠프는 박물관 측이 주로 중·고등학교에 초빙을 하는 방식으로 교사나 학생들 대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육 횟수는 매일 1건 이상에서 한 달에 5~6건으로 줄고, 운영 프로그램도 10개 과정에서 7개 과정으로 축소됐다.
박물관은 앞으로 교육 횟수와 프로그램 모두 다시 늘릴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할 만하다. 비행기 설계와 관련해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코딩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비에이션 캠프는 이런 끊임없는 노력으로 교육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초등 맞춤형 ‘첨단항공우주과학관’도 근처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출입구 쪽으로 나가다가 왼쪽으로 틀면 사천 첨단항공우주과학관과 연결된 통로가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통합권을 구매하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관에서 통합권을 구매해도 박물관 입장이 가능하다.
항공우주박물관이 고등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항공산업을 소개하고 과학 원리를 교육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과학관은 더 어린 학생들이 놀이를 통해 비행기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종이비행기를 접으면 항공모함의 캐터펄트 같은 탄성식 장치로 날릴 수 있고,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디지털 장치로 비행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낙하산이나 해상 탈출 슬라이드도 마련돼 평소에 접하기 힘든 경험이 가능하다. 여기에도 상설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어 항공 공학도를 꿈꾸는 어린이라면 미리 시설·교육 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 있다.
항공우주박물관 직원들은 땅에서 하늘을 마음껏 즐기고 출출해지면 박물관에서 차로 5분여 거리에 있는 하주옥에 가라고 추천한다. 주인은 진주냉면으로 유명한 하연옥 주인과 남매지간이라고 한다. 진주 물냉면이 시그니처 메뉴지만, 부드럽고 푸짐한 육전도 함께 시키면 더 좋다. 육전을 주문하면 쇠선지국도 함께 나오는데, 쇠선지국밥을 단품으로 주문할 때와 양이 크게 다르지 않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차로 10분 거리에 사천공항, 30분 거리에 KTX 진주역이 있어 접근성도 좋다. 사천의 해안도로를 따라 30분~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진주성이나 남해군 독일마을과 같은 서부 경남의 명승지도 쉽게 갈 수 있다.
과슐랭 별점
자체 콘텐츠(2/3) ★★ 에비에이션 캠프, 정말 좋은데 들을 기회가 쉽지 않네
주변 연계(2/2) ★★ 바로 옆 과학관까지, 항공우주의 모든 것을 ‘원스톱’ 체험 가능
전체 평가(4/5) ★★★★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학습이 되는 항공 덕후 양성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