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년도 기초연구 분야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보다 11.6% 늘어난 2조9400억원으로 책정됐다. 우수한 연구자가 기존 연구과제를 이어가고,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도 신설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열린 제9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의결하고 내년도 기초연구 예산을 역대 최대로 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확정된 내년도 주요 R&D 예산은 24조8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2조9000억원 늘었다. 정부 R&D 삭감이 이뤄지기 전인 2023년의 24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1000억원 늘어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중 2조9400억원은 기초연구 사업에 투입한다.

기초연구 예산은 올해 정부 R&D 예산이 삭감되는 와중에도 작년보다 소폭 늘어난 2조1179억원이 배정됐다. 그래도 연구 사업이 대거 재편되면서 과학계에서는 젊은 연구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규모 과제가 사라지고 대형화되면서 기초연구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보편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내년 기초연구 예산은 올해보다 11.6% 늘었다. 기초연구 예산 증액과 함께 연구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사업도 신설한다. 우수성과자의 후속 연구를 지원하는 ‘도약 연구’와 새로운 분야에서 과감한 연구를 지원하는 ‘개척 연구’다. 올해 처음 신설된 ‘창의연구형 사업’은 내년 대폭 확대해 소규모 연구를 돕는다는 구상이다.

도약 연구는 기존 연구 사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연구자에게 필요한 후속 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별도의 평가를 통해 상위 30%에 든 연구자가 대상이다. 기존 연구 사업이 일회성으로 끝난 이후에 후속 연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한 해결책이다. 예산 규모는 750억원 정도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연구를 잘 해왔고,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사업을 신설했다”며 “가령 중견 연구 사업이 끝난 연구자 중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 지원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패 가능성이 크거나 지금까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연구자를 위한 개척 연구 사업도 신설한다. 기존 평가위원회를 통해서는 선정되기 어려운 새로운 분야가 지원 대상이다. 과기정통부는 소외된 분야의 연구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평가위원을 지정해 지원 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다만 구체적인 선정 방식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예산은 150억원 정도를 일단 배정했다.

올해 신설돼 연간 7000만원 수준의 소규모 연구를 지원하는 창의 연구는 내년에 대폭 확대한다. 연간 5000만원 규모의 ‘기본연구 사업’의 올해 신규 과제가 사라지면서 이론 연구나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약 140개의 과제를 지원하면서 소규모 연구가 필요한 연구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다만 구체적인 확대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9월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된 이후 확대 규모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올해는 과제를 140개 밖에 만들지 못해 많은 연구자들을 지원하지 못했다”며 “내년 이후에는 과제를 대폭 확대해 연구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년도 기초연구 예산이 늘고 새로운 사업도 만들어졌지만 과학계는 여전히 기초연구 생태계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기초연구연합회 회장인 정옥상 부산대 화학과 교수는 “올해 소규모 과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대학원생 2~3명으로 운영하는 작은 연구실들이 문을 닫고 있다”며 “정부가 계속 수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보편성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