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주 한국과학기술원(KAIST) 21학번 학생(학위수여식 R&D 예산 복원 요구 입틀막 강제퇴장에 대한 대학생·졸업생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 지난 3월 27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 전인 2023년 규모를 웃도는 24조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과학기술계는 R&D 예산 원상복구라는 소식을 반기면서도 갑작스러운 삭감 1년 만에 예산을 원래대로 올린 것은 정책에 지속성이 없다는 걸 정부 스스로 인정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한 사립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원상복구 소식은 다행”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연 12억원 규모였던 연구비를 6억원으로 줄였는데, 원래대로 복구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연구 과제로 가야 하는 건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과제 예산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면 원상복구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지역 거점 연구자나 신진, 중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00억원짜리 과제 하나보다 1억원짜리 과제 100개가 더 좋은 연구 성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한다”며 “R&D 정책에서 선택과 집중 기조가 적합한지, 주요 분야에 들어가는 대규모 예산이 잘 쓰이고 있는지 계속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한 단장급 연구자도 “올해 많은 연구자가 고생했는데 예산 증액은 좋은 소식”이라며 “정부가 혁신을 위해 개혁적으로 나가다 보니 내홍이 있었지만, 내년은 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과학계가 회복해 나갈 수 있는 해가 되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났다.

다만 정책의 지속성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자는 “총 연구 기간이 1년을 넘는 계속과제는 올해 예산 삭감의 영향으로 과제가 멈추거나 예산이 크게 줄었다”며 “과학계만큼은 정권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도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예산을 배분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인 이공계 대학·대학원생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현서 연세대 이과대학 학생회장은 “2023년 수준으로 예산이 오른다고 해도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올랐다고 볼 수 없다”며 “2023년보다 찔끔 올려놓고 역대 최대라는 명분만 챙기는 보여주기식 예산 증액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 “1년 만에 복원했다는 것은 정책 일관성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학생들은 석사, 박사 과정까지 5~10년을 보고 진로를 설정하는데 정책이 계속 바뀌다 보니 실망이 크다”고 했다. 그는 올해 예산을 삭감했던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추가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는 “더 나은 과학계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R&D 예산 삭감의 실질적인 문제와 그에 따른 경제적, 심적 피해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학생들의 불안감은 이미 높아졌다”며 “예산 삭감은 장기간 쌓아왔던 연구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어 “R&D 예산의 불안정성은 과학계 경력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심적 불안감을 키웠다”며 “제대로 된 소통이나 사전 공지 없이 R&D 연구비가 삭감되는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