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김호중(33)씨가 지난 9일 오후 11시 4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반대편 도로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김씨는 사고 현장을 수습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 ‘뺑소니’를 한 김씨는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 만인 10일 오후 4시 30분쯤 경찰에 출석했다. 경찰에 출석한 김씨는 처음엔 음주운전 의혹을 부인했다.
김씨가 음주운전을 시인한 건 사고 열흘 만인 지난 19일이다. 예정돼 있던 개인 콘서트를 강행하기 위해 거짓말로 버티다 결국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거짓말을 계속 밀어붙이지 못했던 건 결국 음주 사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씨가 17시간 전에 마신 술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던 걸까.
김씨의 음주 사실을 찾은 일등공신은 ‘법과학’이다. 법과학은 과학적 관찰과 실험으로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법과학 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과 심리평가, 디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 약독물 감정, 폐쇄회로(CC)TV 분석을 수행한다. 과학수사로 정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 범죄자를 잡거나 누명을 벗기는 역할을 한다.
음주 측정도 법과학에서 중요한 분야이다. 음주 운전자들은 도주, 증거인멸, 거짓 진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혈중 알코올 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예전 음주 측정기는 풍선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날숨에 포함된 알코올과 반응하는 것을 봤다면, 지금은 전자식 측정기로 바꿔 정확도를 높였다. 홍성욱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는 24일 “음주 측정 기술이 갈수록 발달해 이제는 ‘한 잔 마셨다’는 거짓말을 더 잘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간단한 음주 측정법은 전자식 측정기로 사람 날숨에 포함된 알코올을 잡는 방식이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일부는 호흡과 소변, 땀으로 배출되고 대부분 간에서 해독된다. 알코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거쳐 아세트산이 됐다가 나중에 이산화탄소와 물로 배출된다. 음주 측정기에 날숨을 불면 비슷한 과정이 일어난다.
날숨에 포함된 알코올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면 아세트알데히드나 아세트산으로 변한다. 이때 전자가 떨어져 나와 측정기의 백금 전극 사이로 이동한다. 쉽게 말해 날숨 속 알코올이 백금 전극에 붙으면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홍 교수는 “알코올 분자가 많을수록 전류의 세기가 커지기 때문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측정할 수 있다”며 “날숨에 알코올 분자 1개가 있으면 혈액 속에는 2100개가 있다는 평균치를 적용해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코올 분해 능력은 개인마다 다르다. 홍 교수는 “호흡 검사로 알코올 분자를 잡아 일괄적으로 2100을 곱하기 때문에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 음주 측정을 하려면 혈액 채취 검사를 하면 된다.
알코올은 대부분 소장에서 흡수되고, 이어 혈관을 통해 간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혈관에서 이동 중인 알코올을 채취하는 혈액 채취 검사가 음주 측정에서 가장 정확하다. 음주 운전자 중에는 알코올이 분해되는 시간을 벌기 위해 혈액 채취 검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히려 호흡 측정 수치보다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김호중씨가 음주 운전을 시인하도록 한 결정적인 법과학은 가장 최신 기술인 음주 대사체 측정이다. 몸에 들어간 알코올 90% 이상은 간에서 해독되지만, 나머지 10%는 간 해독과 다른 대사과정을 거쳐 다른 물질로 바뀌고 땀이나 소변으로 나온다. 음주 대사체 측정은 구체적으로 에탄올이 소화되면서 나오는 에틸글루쿠로나이드(EtG)와 에틸설페이트(EtS)를 찾는다.
홍 교수는 “사람이 밥을 소화하면 인분이 생기듯, 술을 소화하면 에틸글루쿠로나이드와 에틸설페이트라는 부산물을 만든다”며 “호흡이나 혈액으로 알코올을 검출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면 소변에서 이런 알코올 부산물을 측정해 음주 여부를 가린다”고 설명했다.
음주 대사체 측정법의 가장 큰 장점은 음주 여부 확인 시간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호흡이나 혈액 측정 같은 기존 음주 측정법은 8시간이 지나면 알코올을 찾기 어려웠다. 반면 음주 대사체 측정법은 17시간까지 에탄올 대사체를 찾아낼 수 있어 ‘음주 측정 골든 아워(한계 시간)’를 두 배 이상 늘렸다. 김씨도 술을 마신 지 17시간이 지나서 경찰에 출석했지만, 소변에서 음주 대사체가 검출돼 음주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과학계는 음주 측정 정확도를 더 높이기 위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국과수가 연내 도입할 ‘한국형 위드마크(Widmark) 공식’이 대표적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스웨덴 생리학자 에릭 위드마크(Erik Widmark)가 1931년 개발한 공식으로,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추적하는 방법이다.
음주 측정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가 같아도 실제 음주량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체격이나 나이에 따라 알코올 분해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드마크 공식은 나이와 체중, 키 같은 개인별 조건을 적용해 혈중 알코올 농도의 정확성을 높인다.
위드마크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계산하면 음주 운전자들의 “맥주 딱 한잔했다”는 흔한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위드마크 공식은 음주 운전자들의 진술을 가려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단순 추정치이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 검사와 병행하면 운전자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기존 서양인을 기준으로 한 공식에서 벗어나 한국인 맞춤 위드마크 공식을 개발하고 있다. 국과수 관계자는 “한국인 대상 임상시험 데이터와 최근 국내외 연구결과를 검토해 새로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한 ‘혈중 알코올 농도 계산 지침서’를 작성하고 있다”며 “기존 위드마크 공식은 다양한 개인별 조건을 반영하지 못하는데, (새로운 위드마크는) 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