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분자의 구조가 음악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단백질과 물 분자의 상호작용을 소리로 나타냈다./미 MIT

단백질은 거의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근육과 같은 구조를 만들거나, 생체 화학 반응을 매개하거나 물질을 옮기는 능을 수행한다. 단백질에 대한 이해는 곧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고 할 정도다. 과학자들이 ‘소리’를 활용해 단백질이 3차원 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분석했다. 현미경이나 화학반응이 아니라 음(音)으로 단백질 합성을 연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들이 접혀 3차원 구조를 이루는 과정을 소리로 나타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단백질은 주변 환경에 따라 70㎱(나노초=10억분의 1초)에서 2㎲(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사이 매우 짧은 시간에 3차원 구조를 이룬다. 이때 단백질이 잘못된 구조로 접히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낭포성 섬유증 같은 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단백질 접힘 과정에서 주변 물 분자와 아미노산 사이의 ‘수소 결합’에 주목했다. 수소 결합은 질소, 산소와 같은 원자와 수소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단백질은 주변 물 분자와의 수소 결합을 여러 차례 바꿔가면서 가장 안정한 구조를 찾는다.

과학자들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서열을 바탕으로 3차원 구조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단백질 결정을 만들고 X선을 쏘아 입체 구조를 확인했다. 하지만 기존 연구처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수소 결합의 위치와 시간대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웠다.

마틴 그루벨(Martin Gruebele) 일리노이대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작곡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칼라 스칼레티(Carla Scaletti) 심볼릭 사운드 대표와 함께 단백질이 접힐 때 발생하는 수만 번의 수소 결합을 소리로 나타냈다. 이번에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수소 결합마다 고유한 음 높낮이를 할당하고, 단백질이 접히는 전체 과정을 초음파로 나타냈다.

연구진은 “인간 두뇌에서 소리는 시각적 데이터보다 2배 빠르게 처리돼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더 잘 감지할 수 있다”며 “수십만 건의 수소 결합을 소리로 나타내면 단백질이 언제 접히거나 펼쳐졌는지 빠르게 식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일부 물 분자와 단백질 사이의 수소 결합은 단백질 접힘의 속도를 높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또 다른 일부 결합은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그루벨 교수는 “단백질의 최종 구조를 형성하는 데 물 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물 분자는 단백질이 다른 접힘 구조로 바뀔 때 구조를 안정화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백질을 음악으로 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9년 마커스 뷜러(Markus Buehler)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 연구진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서열을 음표로 나타낸 바 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음악을 약간 변형한 뒤에 다시 아미노산 서열로 바꿔 새로운 유형의 단백질을 만들어냈다.

뷜러 교수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음계로 표현해 발표했다. MIT 연구진은 아미노산마다 고유한 음을 부여하고, 코로나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 구즈를 악보로 변환시켰다.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인체 세포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당시 연구진은 스파이크의 악보를 이용해 그에 맞는 항체나 약물을 개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PNAS(2024), DOI: https://doi.org/10.1073/pnas.231909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