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제도 개선을 통해 낭비 요소를 줄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도 동시에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R&D 예산 삭감이 연구비 배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작된 만큼, 과학계에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이 장관은 8일 세종시의 한 식당에서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년 R&D 예산 효율화 과정에서 과학기술계와의 소통에 아쉬움이 있었다"며 "올해 늘어난 신규 과제 예산을 조속히 집행해 연구 현장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내년도 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구체적인 R&D 예산 증액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정부 R&D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연구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산만 덜렁 올리는 게 아니라 제도 개선도 같이 해서 낭비적 요소는 줄이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작년 R&D 예산 삭감이 불투명성과 불공정성, 나눠먹기에 대한 많은 지적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내가 인사청문회를 할 때도 여야 의원들이 연구비가 늘어난 것에 비해 결과는 없다고 지적했다"며 "시스템이 투명하고 정상적으로 간다면 무턱대고 R&D 예산을 줄일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제도 개선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체계를 만든 뒤에 증액해나가는 게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낫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 논의되고 있는 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사업을 기획하고 예타를 하다보니 R&D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신속하게 추진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을 해서 위원회 조직을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타란 일정 기준 이상의 예산과 국비가 투입되는 도로·철도·공항 등 SOC(사회간접자본) 건설과 R&D(연구개발) 분야 신규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는지 사전에 경제성을 검토하는 제도다. 이 장관은 "시설이나 인프라와 같은 부분은 앞으로도 재정 당국과 논의를 계속해서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대체로 순수 R&D에 한해서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류광준 과학기술혁신본부장도 "대통령실에서 예산을 확대하겠다고 한 건 어디까지나 선도형 R&D로의 전환이나 시스템 혁신이 전제됐을 때의 일"이라며 "더딜지는 몰라도 꾸준히 R&D 시스템 체질을 개선하고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이창윤 제1차관은 "반도체, 이차전지 같은 선도산업이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첨단바이오, 차세대 에너지 같은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게 과기정통부의 미션"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계는 하루빨리 연구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기초연구연합회 부회장)는 "기초연구는 올해 예산이 소폭 늘어나긴 했어도 과제수 감소로 인해 연구 사다리가 무너지고 다양성이 훼손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며 "있지도 않은 카르텔 논란을 두고 싸우기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연구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며 "지금 정부도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듣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는 만큼 실질적인 개선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