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화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후연구원은 '노벨상 펀드'로 불리는 HFSP 펠로우십에 선정됐다. 강 박사는 박사학위 과정에서 연구한 내용과 차별화된 연구 주제를 제시한 것이 선정 비결이라고 말했다./강병화

한국인 과학자가 ‘노벨상 펀드’로 불리는 휴먼프론티어사이언스프로그램(HFSP) 연구비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주인공은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강병화 박사이다. 강 박사는 포항공대(포스텍) 신소재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부터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다.

HFSP는 전 세계 17국을 회원으로 둔 생명과학 분야 공동 연구 지원 기금이다. 원래 이름보다 ‘노벨상 펀드’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젊은 연구자 50~60명을 펠로우십으로 선정해서 3년 동안 연구비로 20만 달러를 지원하는데, 연구비 지원을 받은 과학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와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HFSP는 지금까지 70여국에서 젊은 연구자 8500명 이상을 지원했다. 2004년 회원국이 된 한국도 매년 서너 명씩 지원 대상자를 배출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4월 초에 2024년 신규 지원 대상자 59명이 발표됐는데, 한국인 과학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정부가 글로벌 공동 연구와 국제 협력을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선포한 직후라 아쉬움이 더 컸다.

하지만 4월 말 추가 선정에서 강병화 박사가 신진연구자 지원을 받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비즈는 강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HFSP 선정 과정과 연구 계획 등을 들었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2012년 고려대 신소재공학부에 입학해 생명과학부를 이중전공했고, 작년 8월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오승수 교수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지난해 9월부터 존스홉킨스대의 레베카 슐만(Rebecca Schulman)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나.

“핵산과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핵산은 DNA(디옥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로 대표되는데, 세포 내에서 유전 정보의 저장과 전달을 맡고 있다. 신기하게도 특정한 핵산들은 염기서열 정보에 따라 굉장히 흥미로운 기능성을 보인다. 마치 항체나 세포 안의 수용체처럼 특정 생체분자만 골라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고, 효소처럼 촉매 활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를 이용해 기능성 핵산을 제작하거나 기존의 기능성 핵산이 갖는 문제점을 개선하는 연구를 주로 했다. 제 연구의 최종 목표는 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서 핵산을 포함한 기능성 생체 분자들의 정교한 제어다.”

–HFSP에도 핵산을 이용한 연구를 신청했나.

“HFSP 펠로우십은 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 까다롭다.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연구 주제여야 하지만, 지원자가 박사학위과정 중에 연구하지 않은 분야라서 지원자가 새로운 전문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전문이 아닌 분야에서 과학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완성도 있는 연구 제안서를 써야 한다. 내 경우에도 생체분자 응축물(biomolecular condensate)이라고 하는 분야를 선택했다. 세포 내 상분리에 의해 형성된 소기관이 수많은 화학 반응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세포 안에는 지질막이 없이 생체분자들의 인력에 의해 상분리돼 만들어지는 세포소기관인 생체분자 응축물이 있는데, 이 곳에서 수천 개 이상의 화학 반응들이 효율적으로 제어된다. 어떤 원리로 이런 제어가 이뤄지는지 여전히 이해가 부족한 상태인데, 내 연구는 이를 밝혀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HFSP는 경쟁이 치열한데, 어떤 점이 평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보나.

“세 가지다. 연구 제안서의 높은 수준, 도전하고자 하는 연구의 참신함, 그리고 지원자의 박사 연구와 제시된 아이디어의 차별점이다. HFSP 펠로우십 지원과 관련해 심사자들의 반응을 분석하면 이 세 가지가 강점으로 인정받은 것 같다. 연구 제안서가 정말 논리 정연하게 잘 작성이 되었는지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고, 그 제안서 안에 들어있는 아이디어가 기초생명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도전적인 주제인지 우선적으로 평가되는 것 같다. 한 달 정도 연구제안서를 준비했는데, 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지도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아서 퇴고를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한 달 동안 퇴고만 19번을 진행할 정도로 치열하게 준비했다.

기존 박사 연구 주제와 차별점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디어의 입증을 위해 박사학위과정 중에 사용해본 기능성 핵산들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증명 방법을 일부 제시했는데, 심사자들로부터 ‘이 지원자는 기존의 연구를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HFSP를 준비하는 다른 연구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HFSP 펠로우십 지원에 관심 있는 다른 연구자분들은 상당히 도전적인 연구 주제를 폭넓은 문헌조사를 통해 제안하되, 아이디어의 구현을 위해 기존에 자신이 해본 연구적 증명법과는 확실하게 다른 것을 활용하겠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강병화 존스홉킨스대 박사후연구원은 한국과 미국의 차이로 삶의 여유를 꼽았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미국에서의 삶이 연구를 할 때도 좀 더 창의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강 연구원이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새해 기념 저녁 회식을 하고 있는 모습./강병화

–HFSP 같은 기금이 연구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바이오재료와 핵산 화학 분야에서는 정부의 연구비가 사실상 연구의 질을 결정한다. 바이오 관련 연구들은 하나하나 실험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지만, 국내에는 연구비를 줄 수 있는 대형 바이오 회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국내 바이오 연구자들은 정부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기초과학이나 연구 현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을 넘어 사실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에서 박사까지 하고 미국으로 옮겼다. 어떤 차이가 있는 지 궁금하다.

“가장 큰 차이는 삶의 여유인 것 같다. 연구역량이 차이 난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으나 미국의 연구 현장이 확실히 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여유가 창의적인 연구 주제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느꼈다. 이러한 마음이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하고, 연구 주제에 대해 한 번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내 연구자들도 연구비를 많이 지원받고 성과 보고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재밌는 연구를 폭넓게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요 연구 성과

Biotechnology Advances(2019), DOI : https://doi.org/10.1016/j.biotechadv.2019.107452

ACS sensors(2019), DOI : https://doi.org/10.1021/acssensors.9b01503

Nucleic Acids Research(2021), DOI : https://doi.org/10.1093/nar/gkab285

Science Advances(2022), DOI : https://www.science.org/doi/full/10.1126/sciadv.abq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