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면역 시스템에 관한 모든 세포와 유전자, 장내미생물을 찾고 기능을 연구하기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최종 목표는 인공지능(AI) 학습을 위해 면역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2003년 완료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다시 한번 의학과 생물학 발전에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비영리 글로벌 과학 협의체(이니셔티브) ‘인간 면역 프로젝트(HIP)’는 29일 “전 세계 기업, 대학, 연구소 36곳이 참여해 인간의 면역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밝히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끄는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 출신의 한스 키어드 HIP 최고경영자(CEO)는 “면역 체계는 인간 건강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면역 시스템의 비밀을 찾고 모두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5년간 아프리카, 호주, 동아시아, 유럽, 중동, 북미, 남미 10개국에서 각각 5000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면역 관련 데이터를 수집한다. 매년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한 후 면역 세포의 비율·상태, 단백질, 심지어 장내 미생물의 변화까지 추적할 계획이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변화 양상을 비교해 인간의 복잡한 면역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다.
5년 동안 데이터를 수집해 표준을 마련한 후에는 본격적인 연구에 나선다. 목표는 전 세계 100개 기관이 참여하는 것이다. 앞서 5년간 시범 사업을 통해 면역 모니터링 키트를 만들어 데이터 표준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AI를 개발하기 위한 데이터를 대량 수집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간의 면역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은 물론 미지의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백신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금까지 개별 세포, 단백질, 장내미생물 같은 면역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뤄졌지만, 전체 시스템 수준에서의 이해는 부족한 상황이다.
키어드 CEO는 “면역 기능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면역학적 데이터는 1%도 채 되지 않는다”며 “인류의 다양성과 면역 시스템의 복잡성을 반영한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면역은 자연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외부에서 들어 오는 병원균과 바이러스 감염을 막고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암세포를 공격해 인간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화에도 면역 시스템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키어드 CEO는 “데이터가 모이면 AI 모델을 개발하고 신약과 맞춤형 의학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며 “노화와 인지 저하, 감염병을 비롯한 인간의 건강과 관련한 많은 부분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면역 프로젝트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된 ‘인간 백신 프로젝트(HVP)’의 후속 연구 사업이다. 당시 미국 스크립스연구소를 중심으로 백신에 의한 면역 반응을 나타내는 B세포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AI 모델을 개발했다. 백신 접종에 따른 인체 반응을 AI로 모사해 감염병 예방 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는 목표였다.
연구진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면역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프로젝트를 확장했다. 2022년 말 인간 면역 프로젝트로 전환하고 인체 면역 시스템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아스트라제네카, GSK, 얀센, 모더나, 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 함께 미 국립보건원(NIH), 하버드대, 스크립스연구소, 독일 헬름홀츠감염병연구센터(HZI)를 비롯한 연구기관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