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50만명이 앓는 췌장암은 진단 이후 생존 기간이 짧아 ‘조용한 암살자’라고 불린다.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암이 진행된 뒤라 수술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미국 연구진이 종양 퇴치 능력이 높은 새 유형의 치료법을 개발했다.
미국의 항암제 개발 회사 ‘레볼루션 메디슨(Revolution Medicines)’과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8일(현지 시각) 전례 없는 췌장암 퇴치 능력을 보이는 경구용 약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소개됐다.
연구진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암의 최대 3분의 1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RAS 단백질 돌연변이’에 주목했다. 특히 RAS 단백질의 한 종류인 KRAS의 돌연변이는 췌장 종양의 85~90%가량을 차지하는 췌관 선암종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까지 RAS 단백질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약물이 없었다.
연구진은 RAS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억제제 ‘RMC-7977′을 개발했다. 이어 레볼루션 메디슨과 컬럼비아대를 비롯해 펜실베이니아대, 다나-파버 암 연구소, 노스캐롤라이나대,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개발한 모든 전임상 모델로 신약을 테스트했다. 케네스 올리브 컬럼비아대 허버트 어빙 종합 암 센터 교수는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임상 모델에 신약을 테스트한 결과, 활성화된 RAS 돌연변이를 억제해 종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RMC-7977만 사용해도 2~3가지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병용 요법보다 효능이 뛰어났고, 컨소시엄이 다른 모델에서 실험한 결과도 비슷했다고 밝혔다. 신약은 종양 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정상 세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연구에 참여한 말리카 싱 레볼루션 메디슨 중개 연구 담당 부사장은 “모든 RAS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억제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올리브 교수는 “20년 동안 췌장암을 연구해 왔지만 이와 같은 전임상 결과를 본 적이 없다”면서도 “신약으로 종양이 사라지지는 않아 췌장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는 임상 시험을 통해 확인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37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