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원상복구를 넘어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편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해 R&D 예산을 삭감한 지 1년 만의 '유턴'이다. 다만 담당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세계 최초·최고 기술을 위한 R&D 시스템을 강조하며 이런 원칙에 부합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예산이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R&D다운 R&D를 위한 정부 지원 방식의 개혁이 완결됐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우나 세계가 기술 경쟁에 뛰어드는, 유례없이 빠른 기술 변화의 파고 속에서 개혁 작업에 매달릴 수만은 없다"며 "그래서 개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내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백브리핑에서 내년도 R&D 예산 규모가 역대 최고 수준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예산 규모가 나오려면 몇 달이 필요하지만, 올해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정부 R&D 예산은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와 R&D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논의하지만, 대통령실의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지침이 나온 만큼, 2023년 규모인 31조원은 넘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재정당국에선 비R&D 예산으로 이관된 사업을 감안하면 2023년 R&D 예산은 29조원 수준이라는 입장이라 구체적인 수치는 재정전략회의가 열리는 6월 말은 돼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도 R&D 예산 편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차관은 "지난해 예산 구조조정에 나섰던 건 선도형 R&D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어려운 선택이었다"며 "이제는 세계 최초·최고에 갈 수 있는 프론트 라인 수준의 R&D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내년 R&D 예산 편성은 단순히 양적인 팽창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기초원천 연구와 공공이 맡아야 할 차세대 기술, 젊은 연구자 양성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예산을 편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R&D 예산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구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편성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라도 보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차관은 "예산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성과에 기반해서 결정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들도 아쉬움이 있다"며 "사후적으로라도 보완할 수 있는 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이날 대통령실이 발표한 'R&D 개혁 방향'의 후속 조치도 서두르겠다고 설명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간 칸막이, 그리고 출연연과 대학 간 칸막이를 없애고,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혁신 방안 등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지금의 출연연 체제는 1970년대에 만들어져서 이어지고 있고 여러 기술이 경계 없이 융합하는 추세에 맞지 않다"며 "로봇만 해도 출연연들이 저마다 연구실을 만들고 연구하는데 칸막이를 없애고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복이 아니라 분산이 문제인데, 칸막이를 없애고 기술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화학적인 융합을 할 방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