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분자 세계의 비밀이 밝혀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이효철 첨단 반응동역학 연구단 단장 겸 KAIST 화학과 교수 연구진은 화학적 단결정 분자 내 구조 변화와 원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고 26일 밝혔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원자들은 화학결합을 통해 분자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자는 수 펨토초(1000조분의 1초)에 옹스트롬(1억분의 1㎝) 수준으로 미세하게 움직여 시간과 공간에 따른 변화를 관측하기 어려웠다.
분자에 엑스선을 쏜 뒤 분자의 가장자리에서 휘어져 나오는 엑스선의 회절 신호를 분석하는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의 등장으로 원자의 배열과 움직임을 관찰하는 도구가 상당한 발전을 이뤘으나, 주로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 물질에 대한 연구에 집중됐다. 단백질이 아닌 작은 분자의 결정은 생성되는 신호가 약해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진은 수 펨토초의 순간에 변화하는 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엑스선 자유전자 레이저를 이용한 시간분해 연속 펨토초 결정학(time-resolved serial femtosecond crystallography, TR-SFX) 기법을 사용했다. 이 기법은 엑스선 자유전자 레이저에서 생성되는 펨토초 엑스선 펄스를 반응 중인 분자에 쏴 얻은 엑스선 회절 신호를 분석해 특정 순간 분자의 구조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펨토초 엑스선 펄스는 펨토초 단위의 짧은 시간 동안 방출되는 빛을 뜻한다.
연구의 공동 제1저자인 이윤범 선임연구원은 “방대한 양의 엑스선 회절 신호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 원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며 “마치 분자의 초고속 변화를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철 포르피린 유도체와 지르코늄 클러스터가 반복되는 다공성 물질에 일산화탄소가 흡착된 결정에 강력한 자외선 레이저를 쏴 반응을 유도했다. 이후 펨토초 엑스선 펄스를 쏴 회절 신호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철 포르피린에 흡착된 일산화탄소가 떨어져 나오면서 수백 펨토초 안에 세 가지 구조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분자의 역동적인 구조 변화를 포착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전 연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단백질 내 화학반응의 전이상태와 그 반응 경로를 3차원 구조로 규명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최초로 분자 단위 시스템에서 비단백질 분자의 구조 변화를 밝히는 데 성공해 분자 동역학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를 이끈 이효철 단장은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적극적 지원으로 화학적 단결정 분자의 구조 변화를 최초로 포착할 수 있었다”며 “분자 단위 화학 시스템 연구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서 시간분해 연속 펨토초 결정학의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공동 제1저자인 강재동 학생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분자 구조를 정확히 통제해 맞춤형 특성을 가진 새로운 물질을 설계하는 연구에 기초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촉매, 에너지 저장과 이산화탄소 포집, 약물 전달과 같은 다양한 연구 분야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지난 25일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참고 자료
Nature Chemistry(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57-024-0146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