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는 매년 말 '올해의 혁신'과 '올해의 실패'를 선정한다. 한 해 동안 발표된 과학 연구 성과 가운데 혁신을 가져온 성공적인 연구와 실패로 끝난 연구나 과학을 선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의 성과나 연구가 선정되는데 작년에는 한국도 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아쉽게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올해의 실패' 항목이었다.

사이언스가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실패'에는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연구들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 과학계를 강타했던 퀀텀에너지연구소의 'LK-99′가 그 중 하나다. 하지만 LK-99보다 사이언스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한 상온 초전도체가 있다. 바로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랑가 디아스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상온 초전도체 'CSH'다. 사이언스는 "연초에 혁명적이라고 환영받았던 디아스 교수의 연구 성과가 논문 철회로 허무하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랑가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가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경고 문구가 추가됐다. 네이처 학술지는 이달 1일 "데이터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경고했다./네이처

◇두 번의 네이처 논문, 모두 철회로 끝나

초전도 현상은 전류가 저항을 받지 않고 흐르는 것을 말한다. 1911년 처음 초전도 현상이 발견됐는데 당시에는 섭씨 영하 270도의 극저온에서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 이후 과학자들은 초전도 현상을 더 높은 온도에서 구현하기 위해 100년 넘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초전도체는 자기공명영상(MRI) 스캐너나 입자가속, 특수 전자기기에 사용되기 때문에 상온 초전도체가 구현된다면 새로운 과학 혁신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크다. 상온 초전도체는 무손실 전력 전송을 가능하게 할 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를 구현한 건 2021년 독일 연구진이 영하 70도에서 황화수소 형태의 초전도체를 발견한 게 전부다. 아직까지 상온 초전도체는 꿈에 불과하다.

그런데 202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한 편의 논문이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로체스터대의 디아스 교수가 섭씨 15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무명에 가까웠던 디아스 교수는 이 논문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물론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디아스 교수는 탄소, 황, 수소(C·S·H)가 들어간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디아스 교수와 함께 일하는 대학원생 누구도 이 물질에서 초전도체의 특성인 전기 저항 제로나 마이스너 효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마이스너 효과는 특정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거나 자기장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반자성질을 말한다.

랑가 디아스(왼쪽) 교수와 그의 학생이 실험실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디아스 교수의 초전도체 논문에 참여한 학생들은 논문 철회를 지지하며 지금은 디아스 교수와 등을 돌렸다./로체스터대

디아스 교수는 2020년 7월 21일 오후 5시 13분에 대학원생들에게 네이처에 게재할 논문의 초고를 보냈다. 그전까지 초전도체를 보여줄 특성을 찾지 못했던 대학원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추가적인 검증과 실험이 필요했지만, 디아스 교수는 학생들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같은 날 오후 8시 25분에 논문을 제출했다. 학생들이 디아스 교수에게 새로운 데이터의 출처를 묻자 디아스 교수는 2017년 로체스터대에 부임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데이터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디아스 교수의 주장을 입증할 근거는 없었지만 학생들은 지도교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동료 심사 과정을 거쳐 이 논문은 2020년 10월 14일 네이처에 게재됐다. 동료 심사에 나선 3명의 심사위원 중 2명이 데이터 부족을 지적했지만, 1명이 게재를 지지한 덕분이었다.

논문 발표 이후 논란은 더욱 커졌다. 원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디아스 교수는 2021년 데이터를 공개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호르헤 허쉬 교수는 데이터의 수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열돼 있다며 조작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논문을 출판한 네이처도 다시 조사에 착수했고, 4명의 새로운 심사위원으로 구성됐다. 4명 중 코넬대의 물리학자 브래드 램쇼와 플로리다대의 제임스 햄린은 데이터가 변조됐다는 증거를 찾았고, 결국 네이처는 2022년 9월 26일 디아스의 첫 번째 논문을 철회했다.

디아스 교수는 탄소, 황, 수소(CSH)가 들어간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다고 2020년 발표했다. 네이처에 논문까지 발표했지만 결국 논문은 철회됐다./로체스터대

네이처가 첫 번째 논문 철회를 검토하고 있던 2022년 초에 디아스 교수는 새로운 초전도체를 찾았다며 다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CSH'가 아니라 루테튬과 수소의 화합물이었다. 이번에는 섭씨 200도에서 대기압 2만배의 압력으로 압착했다. 실험 과정에서 디아스 교수 연구실의 한 학생이 전기 저항이 '제로'로 떨어지는 것을 측정했지만, 반복 측정에는 실패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학생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저항이 떨어지는 샘플이 있었지만 일관성이 없었기에 조심스러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아스 교수는 이 물질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확신했고 재차 논문을 제출했다. 이번에도 학생들에게 제대로 검증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디아스 교수가 학생들에게 논문 초고를 보낸 건 2022년 4월 25일 오전 2시 9분이었고, 디아스 교수는 그날 오전 10시 30분까지 의견을 제출하라고 학생들에게 통보했다. 이 논문은 결국 그날 저녁에 네이처에 제출됐다.

이 논문은 4명의 심사위원이 동료 심사를 맡았는데, 2명은 게재를 지지하지 않았고, 2명은 출판을 지지했다. 절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디아스의 두 번째 논문도 2023년 3월 네이처에 게재됐다. 하지만 논문 게재 이후 전 세계 여러 연구팀이 루테튬 수소 초전도체 제작에 나섰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2023년 7월 네이처는 다시 한 번 출판 후 검토에 나섰고 이번에는 4명의 새로운 심사위원 모두가 논문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네이처는 2023년 11월 7일 디아스 교수의 두 번째 초전도체 논문도 철회했다.

◇디아스와 LK-99, 너무나 닮았다

미국 과학계가 디아스 교수의 초전도체 논문으로 시끌벅적한 사이 한국에서는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고 주장한 상온 초전도체 'LK-99′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권영완 고려대 교수, 김현탁 윌리엄앤메리대 교수 등은 작년 7월 상온 초전도체인 'LK-99′를 개발했다며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LK-99의 실체는 커녕 이를 입증할 연구 데이터나 연구 논문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디아스 교수가 논문 데이터를 학생들에게 숨긴 것처럼 퀀텀에너지연구소나 권영완 교수, 김현탁 교수 모두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LK-99'를 만든 연구진. 위쪽부터 권영완 고려대 교수, 김현탁 윌리엄앤메리대 교수,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 이들은 LK-99 연구 성과를 놓고 지금은 갈라섰다./연합뉴스·X

김현탁 교수는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 3월 미팅에서 구두발표를 통해 'LK-99′에 황을 추가한 'PCPOSOS'라는 새로운 초전도체 물질을 공개했지만 역시나 실물은 공개하지 않았고, 동료검증을 거치지 않은 데이터만 발표했다. 이날 현장에서 발표를 지켜본 체코 카렐대의 페트르 체르마크 박사는 엑스에 "강연에서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며 "모든 것은 여전히 추측이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디아스 교수와 제자들이 갈라선 것처럼 LK-99 연구진도 반으로 쪼개져 싸우고 있다. 권영완 교수는 지난 12월 11일 기자회견을 자처하고는 "LK-99의 모든 특성과 분석은 내 손을 거쳤다"며 "김현탁 교수는 LK-99 논문의 교신저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디아스 교수와 LK-99 연구진은 여러 면에서 닮았지만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사뭇 다르다. 디아스 교수는 궁지에 몰려 있다. 로체스터대는 네 차례에 걸쳐 디아스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마지막 4차 조사 결과 문제가 발견돼 지금은 디아스 교수의 강의와 연구를 막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디아스 교수가 2026년까지 받기로 한 33만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연구비 지원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LK-99′ 연구진은 초전도체 실물과 데이터 공개를 미루면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영완 교수는 여러 상장사에 투자자나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 사이 이 회사들의 주가는 요동쳤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연세대학교와 함께 초전도체 개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Nature(2024), DOI : https://doi.org/10.1038/d41586-024-00716-2

Nature(2020),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0-2801-z

Nature(2023),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5742-0

arxiv(2022), DOI : https://arxiv.org/abs/2201.07686v1

arXiv(2023), DOI : https://arxiv.org/abs/2306.06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