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추세츠공대(MIT)가 의대를 만들지 않고 하버드대와 협력하는 것처럼 기관 간에 칸막이 없는 협력이 보스턴을 전 세계 바이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홍릉도 이런 모습이 되면 좋겠다."

지난해 5월 12일 서울 홍릉강소특구를 찾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홍릉특구에 입주한 바이오 기업들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릉특구는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병원이 한데 모여 있어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산·학·연·병 협력을 할 수 있는 클러스터로 평가된다.

1000개가 넘는 제약 바이오 기업과 MIT, 하버드대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연구기관, 병원이 몰려 있는 보스턴 클러스터의 축소판이다. 이 장관이 홍릉특구에서 제2의 보스턴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배경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작년 5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강소특구 서울바이오허브를 방문해 입주기업인 고큐바테크놀로지의 '혼합현실 기반 디지털 치료제 시스템' 설명을 듣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금은 보스턴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주목받는 바이오 클러스터로 떠올랐지만 처음부터 제일 앞서 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생명공학 전문지인 'GEN(Genetic Engineering & Biotechnology News)'은 매년 미국의 10대 바이오 클러스터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보스턴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였다. 보스턴은 2015년 이 순위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고,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비결은 뭘까. GEN의 바이오 클러스터 순위 평가 기준은 크게 다섯 가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자금 지원 규모, 벤처캐피탈(VC) 투자 규모, 특허, 연구소 면적, 일자리 수가 기준이다. 특허나 연구소 일자리 수 같은 지표에서는 오히려 샌프란시스코가 앞서 있다. 하지만 보스턴 클러스터가 압도적인 지표가 있다. 바로 NIH 지원금과 VC 투자금이다. 2015년 보스턴 클러스터의 NIH 지원금은 3억1300만달러로 샌프란시스코(1억4400만달러)를 두 배 이상 앞섰다. VC 투자금도 보스턴이 40억달러로 샌프란시스코(18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보스턴 클러스터의 성공 비결은 분석한 한국바이오협회는 관련 보고서에서 "보스턴의 갑작스러운 부상에는 마중물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2007년 당선된 듀발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10년 동안 10억달러를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 투자가 마중물이 되어 벤처캐피탈의 투자와 대기업의 진입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 클러스터의 VC 투자금은 이후 꾸준히 늘어서 2022년에는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로 보스턴 클러스터를 육성한 전략은 바이오 클러스터 육성에 나선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분산이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홍릉특구 외에도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대전바이오단지,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송도바이오단지, 오송첨단복합의료산업단지 등 여러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다. 규모가 큰 곳만 골라도 이정도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클러스터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바이오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투자가 분산되고, 정체성도 흔들린다.

조용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을 진단하면서 "지역별 바이오산업단지가 외형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지자체 간 과열화된 유치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전략은 부재해 질적 성장은 소홀해 왔다"며 "클러스터 간 협업이 부재하고, 산발적·경쟁적으로 운영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홍릉특구는 서울 내 주요 헬스케어·바이오 분야 거점과 지역 클러스터와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홍릉특구

홍릉특구 관계자들은 다른 바이오 클러스터가 달리 산·학·연·병의 연계가 잘 갖춰진 만큼 집중 투자가 뒷받침 되면 한국의 보스턴 클러스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홍릉특구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선 각 부처별로 다양한 형태의 클러스터들이 조성되고 있으나, 그렇게 조성된 클러스터들이 안정화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하지만 홍릉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R&BD 중심의 클러스터로, 안정화 단계를 지나 자체적으로 산·학·연·병 간 협력하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한국에서도 글로벌하게 활동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등장할 때가 됐다"며 "그런 면에서 글로벌과의 협력 거점을 보유하고 있는 홍릉강소특구가 가장 모범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릉특구는 다른 지역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키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 내에서는 마곡 클러스터나 서울 디지털산업단지와의 연계를 통해 의료기기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서울 밖에서는 김해강소특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중심지에 가까운 홍릉특구는 입지 특성상 제조역량이 약할 수밖에 없는데, 제조 인프라가 잘 갖춰진 김해강소특구와의 협력으로 이런 약점을 보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