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마셜(Barry Marshall) 호주 서호주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28일 오전 10시 30분 고려대안암병원 신관 메디힐홀에서 강연하고 있다./고려대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발효유 제품 광고로 친숙한 배리 마셜(Barry Marshall) 호주 서호주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고려대가 28일 안암병원 신관 메디힐홀에서 개최한 제5회 넥스트인텔리전스포럼(NIF)에서 초청 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마셜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elicobacter pylori)이 위염과 위궤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마셜 교수는 이날 ‘혁신과 호기심이 이끈 연구’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강단에 선 마셜 교수는 ‘셀카’로 청중들과 소통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까지 경험했던 연구에 대한 호기심과 어려움, 혁신을 위한 노력을 밝지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강연에는 고려대 교수진과 재학생, 의대생, 바이오 분야로의 진학을 꿈꾸는 고등학생이 청중으로 참석했다.

만성 위염과 위궤양은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었다. 마셜 교수가 헬리코박터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 위장 질환으로 의사를 찾아가면 스트레스와 식습관을 원인으로 꼽을 뿐이었다.

마셜 교수가 위장 질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무렵, 동료이자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로빈 워렌(Robin Warren) 교수가 위궤양 주변부에서 검은색을 띠는 헬리코박터균을 찾았다. 소식을 듣고 협업을 시작한 마셜 교수는 1982년 헬리코박터균 배양에 성공한다. 나아가 환자 100명의 내시경 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십이지장 궤양을 앓는 환자 13명 모두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었다. 마셜 교수는 곧장 십이지장 궤양과 박테리아의 상관관계를 내용으로 호주소화기학회에 논문을 투고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마셜 교수는 “학회는 우리의 연구 논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논문은 하위 20%에 속했고, 결국 우리는 그 당시 학회조차 참여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통념이었다. 당시 의학계에는 박테리아가 위산을 견디지 못해 위에서는 세균이 증식할 수 없다는 이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은 우레아제(Urease)라는 효소를 분비하는데, 이 효소는 위에서 암모니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암모니아는 위산으로부터 박테리아를 보호하고 헬리코박터균이 증식하도록 돕는다.

배리 마셜(Barry Marshall) 호주 서호주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28일 오전 10시 30분 고려대안암병원 신관 메디힐홀에서 강연하고 있다./고려대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소화기학계가 아닌 미생물학계에서 마셜 교수와 워렌 교수의 연구를 주목했다. 이후 마셜 교수는 실험동물을 이용해 헬리코박터균이 위장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 다만 동물은 인간과 다른 혈액형과 항원을 가지고 있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셜 교수의 연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생겼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고른 방법은 자신이 직접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는 것이다. 마셜 교수는 “동물 실험은 헬리코박터균에 대한 결과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매우 어려운 연구였다”며 “젊은 연구자로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했고, 헬리코박터균을 복용한 지 1년 후 만성 위염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증상이 나타나면서 헬리코박터균을 찾아내는 조직검사법을 개발했고, 한국 제약사인 녹십자(006280)에서 함께 개발에 나서줘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며 “현재는 위염을 넘어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의이기도 한 마셜 교수는 의사과학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의사들은 질환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지만, 자신들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의 환상’을 갖게 된다”며 “나 역시 임상의학에 실망한 측면이 있고, 임상의들은 환자에 대한 경험을 쌓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임상과 과학이 연결되는 방법이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탁월한 결과와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그것이 질병들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기회라는 것을 알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