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특구에서는 노화와 관련 질환을 연구하는 에이징테크 분야를 포함해 피메일테크, 슬립테크 분야의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알츠하이머치료재단의 알츠하이머병 이미지./조선일보DB

한국은 내년이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2070년엔 46.4%로 국민의 절반이 고령인구가 된다. 한국뿐 아니라 2030년에는 초고령 국가가 34개국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화와 각종 질병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노화 관련 질환을 연구하는 에이징테크, 여성 관련 질환을 연구하는 피메일테크(펨텍), 인생의 3분의 1을 보내는 수면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슬립테크다. 서울홍릉강소연구개발특구(홍릉특구)는 에이징테크와 피메일테크, 슬립테크 분야의 기업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뇌 질환 치료제·치매 환자 지원 로봇 개발하는 ‘에이징 테크’

홍릉특구에는 고령화와 노화를 연구하는 에이징테크 분야의 대표 기업 큐어버스와 로아이젠이 있다. 큐어버스는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난치성 뇌 질환 치료를 위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큐어버스의 조성진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을 겸직하면서 쌓은 저분자 신약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과 다발성 경화증을 위한 약물 개발에 뛰어들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 물질인 ‘CV-01′은 비임상을 거의 완료했고 올해 상반기에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존에 승인받은 신약 약물이 주로 증상 완화 역할을 하거나 뇌부종·뇌출혈 같은 안전성 문제가 있지만, CV-01은 특정 타깃에 작용하는 ‘선택성’을 높여 부작용을 줄였다.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치료제 후보 물질 ‘CV-02′ 역시 심장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약물 구조를 최적화해 개발했다. 조성진 대표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는 부작용 가능성이 다른 약물 대비 최대 100배 낮다”며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함께 임상 개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약물 후보를 개발하며 쌓인 인프라를 이용해 항암제와 대사성 질환 치료제의 후보 물질도 발굴하고 있다.

이어 인공지능(AI) 기반의 치매 환자 돌봄 로봇을 개발하는 로아이젠도 홍릉 특구에 속해있다. 박성기 KIST 연구원이 25년간 연구한 경력을 바탕으로 인지와 정보, 정서 면에서 경증치매환자를 돕는 로봇을 만들었다. 최근 2년간 지자체 보급 사업과 제품 판매를 통해 6억의 매출도 냈다.

올해 로아이젠은 프리시리즈 A 단계를 시작으로 투자를 받을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빅데이터 기반의 딥 뉴럴 네트워크와 사람처럼 상황을 인지해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는 심볼릭 AI를 융합해 보다 고성능의 AI 로봇을 개발할 계획이다.

성북구 치매인심센터내 실증교육중인 어르신과 재가돌봄로봇./로아이젠

◇유방암 재발, 조산 위험 예측하는 ‘피메일테크’

사망 원인 1위이기도 한 암은 걸리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항암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항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릉특구의 포스트팁스 기업 디시젠은 한국인 유방암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암 재발 확률을 예측하고 추가 치료를 결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시젠에서 개발한 서비스는 암 조직의 DNA가 아닌 RNA의 발현량을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검사라면 DNA상의 돌연변이를 확인하지만, RNA가 얼마나 발현되는지도 암을 예측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디시젠은 약 179개 유전자를 분석해 재발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김홍섭 디시젠 대표는 “저위험과 고위험군의 차이는 최대 6배까지 난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국내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해 2주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디시젠은 유방암 진단 키트를 전립선암과 갑상샘암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산부의과에 재직 중인 의사가 직접 만든 포피(4P)랩은 임신과 출산, 골반, 태반의 4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여성과 태아의 헬스케어를 위한 기술을 연구한다. 태반을 기반으로 한 줄기세포 재생의학을 연구하며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조산을 예측할 기술도 개발했다.

조산 예측은 호르몬이 자궁 근육 조직에 전달되면 근세포가 수축하는데, 이때 신경 다발의 전기 신호가 변화하는 것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전극의 위치를 바꾸면 자궁의 근육뿐 아니라 질이나 골반 근육을 강화하는 데 적용할 수도 있다.

안기훈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겸 포피랩 대표는 “산부인과 입원 환자 중 70%가 조산 환자”라며 “조산을 방지하는 약제가 있으나 효과가 좋지 않아 조산을 예측하는 기술과 함께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마취 깊이를 0부터 100까지 나타내 의료진에게 마취 심도를 전달하는 브레인유의 제품./브레인유

◇수면 리듬 찾아 ‘꿀잠’ 돕는 슬립테크

홍릉특구의 지원을 받는 브레인유는 생체 신호 중에서도 뇌파를 기반으로 의료 기기와 헬스케어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대표 제품은 환자의 마취 깊이를 0부터 100까지 나타내 의료진에게 마취 심도를 전달하는 제품과 수면 중 뇌파를 수집해 숙면을 돕는 슬립에이드(SLEEPade)다.

특히 브레인유의 제품은 머리를 둘러싸는 큰 기기가 아니라 이마에만 붙이면 되는 작은 기기를 사용한다. 동시에 반응 속도 역시 경쟁제품보다 빠르고, 전극의 접착력을 높여 편의성을 개선했다. 슬립에이드에서 수집한 정보는 스마트폰 앱으로 전달되며 간단한 문진에 답하면 더 정확한 수면 패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난해 브레인유는 매출 10억원을 달성했고, 유럽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슬립포레스트는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불면증과 일주기 리듬을 교정하는 지능형 수면 관리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원철 슬립포레스트 대표 겸 강동경희대병원 뇌신경센터 교수는 “수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 7% 만이 병원에 온다”며 “반면 수면 장애 진료 환자가 110만명 넘어 불과 7~8년 만에 2배로 늘었다”며 창업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했다.

신 대표는 실제로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잠자고 깨는 시간은 물론 식사 시간, 휴대전화를 하는 시간, 평소의 커피나 술 섭취량을 물어 알맞은 수면 리듬을 그려준다. 이를 사용자 스스로가 앱에 입력해 수면 패턴을 찾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수면 코칭 앱이다.

앱에는 패턴에 맞춰 적합한 시간에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취침 루틴도 제안한다. 수면 시간에 앞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거나 오디오북, ASMR, 명상 콘텐츠도 담았다. 오는 3월 앱 개발이 끝나면 1개월 동안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임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7~8월 모든 개발 단계가 끝나면 올해 가을 출시된다.

홍릉특구가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대형 제약사들도 수시로 홍릉특구를 들여다 본다. 새로운 기술을 파악하고,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대웅제약(069620)은 지난 2021년 홍릉특구와 업무협약을 맺고 특구 내 연구소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사업화 연계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홍섭 디시젠 대표는 “홍릉특구는 산학연이 협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다”며 “후속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박성기 로아이젠 대표 역시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테스트베드 서울 로봇실증지원사업’에 주관기관으로 참여하고 있고, 성북구 치매안심센터와 연계해 시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홍릉특구의 도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홍릉특구 관계자에 따르면 “홍릉강소특구에서는 초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중개연구, 대기업과 중견기업, 글로벌 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사업화 자금 지원과 같은 다양한 연구개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에이징·피메일·슬립 테크별 얼라이언스를 구축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