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미국의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 그림이 주목을 받았다. 예술가의 테크닉이 아닌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그림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AI가 생성한 그림을 예술로 볼 수 있을지, 또는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표절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AI는 그림을 넘어서 음악, 문학과 같은 예술 분야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국내 최초 AI 작곡가인 이봄(EvoM)이 등장한 데 이어 유튜브에 AI와 가수를 검색하기만 해도 AI로 특정 가수를 흉내 낸 커버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지난해 가수 박새별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챗GPT 같은 자연어 처리 모델을 본 따 음악을 분석하는 AI를 개발했다. 동시에 AI의 역할을 두고 기술로 봐야 할지, 예술가로 봐야 할지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별칭을 가진 소프라노 조수미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도 AI 응용 연구에 뛰어들었다. 기계는 범접하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인 감정과 기교를 담아 노래하며 ’20대에 동양인 최초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주역’ ‘동양인 최초 국제 푸치니상·그래미상 수상’ ‘한국인 최초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이라는 수많은 수식어를 얻은 세계적인 소프라노이기에 더 의외였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는 지난 16일 열린 KAIST 학위수여식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KAIST

지난 16일 대전 유성 KAIST에서 만난 조 교수는 “AI의 영역이 매우 넓어 어떤 부분부터 연구할지 고민했는데, 조수미공연예술연구센터의 연구원들과 AI 기술을 적용해 결과를 빠르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노래에 접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2021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음악 연주 분석과 생성에 대한 응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 교수의 첫 시도는 AI 피아노의 연주 기술을 무대 공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 교수는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반주자가 노래하는 가수를 따라가게 되는 반면, 초기 AI 반주에서는 가수가 AI 반주에 맞춰야 하는 불합리성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AI를 이용하는 것의 장점도 찾았다. 일반적인 공연에서 사람은 무대를 반복할 때마다 동일한 결과물을 유지하기가 어렵지만, AI는 반복 학습을 거칠수록 오히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조 교수는 지난해 6월에는 조 교수의 성악 데이터를 학습한 AI 보컬과 ‘꽃밭에서’ ‘아베 마리아’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 가운데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조 교수의 대표적인 애창곡이다. 2006년 프랑스 파리 공연 중 고인이 된 아버지 기리며 불렀고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영상으로 공개해 전세계인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이때 피아노 반주는 AI 피아니스트가 맡았다. 조 교수는 “AI 반주의 구현에 있어서 현실적인 반주가 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더 나은 환경을 찾고 있다”며 “공연이 어색하긴 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만한 실험이 되지 않았나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조수미 AI 보컬

예술가의 입장에서 AI는 환영하기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조 교수도 “그 부분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예술가 입장에서 보면 AI는 감정도 없고 작곡가의 의도나 배경지식으로 음악을 해석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AI와 같은 기술이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시대가 변하는 만큼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과 기술을 접목한 결과를 보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맞춰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번에 KAIST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는 조 교수가 문화가 선도하는 미래 과학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국제화 역량 증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오페라 가수로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자랑스럽지만 교수로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예박사학위는 과분하다”며 “미래의 예술 세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만한 연구를 해 보라는 취지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조 교수가 이끄는 조수미공연예술연구센터는 메타버스에서 가상 연주자와 인간 연주자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조수미 아바타가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조 교수에게 당신의 아바타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물었다.

그는 “기술이 일상에 적용되는 과정이고 어쩌면 실제보다 더 많은 가상을 경험하는 날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예술인으로 늘 아름다운 도전을 주장해왔고 다가오는 세상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펼쳐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다만 “기술이 적용되는 시점까지 좋은 기술로 사용될 수 있도록 철학적, 산업적 방안을 함께 모색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